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가장 어린 친구가 토마스다. 나는 열아홉 살의 토마스를 2019년에 인도 헤브론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토마스의 누나인 엘리자베스는 나와 함께 헤브론학교에 근무하고 있었고 이후에 토마스의 매형인 아담도 함께 근무를 했다. 나는 2020년 1월, 수원에 있는 소망교회에서 첫 원어민 영어캠프를 하면서 토마스를 한국에 초청했다. 그때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의 선생님들이 5일 동안 영어캠프를 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날 갈 무렵인 2021년 여름에, 나는 벨기에에 있던 토마스를 한국에 다시 초청했다. 그때 토마스가 나에게 물었다. 왜 자신을 자꾸 한국으로 부르냐고.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나는 네가 좋다. 둘째는 너는 영어캠프를 참 잘한다. 셋째는, 그래서 나는 너와 계속해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 내 답에 흡족했는지 토마스는 그 후로도 내가 부르면 만사를 제쳐두고 온다. 2024년 1월에는 정말 일주일 캠프만 하러 다녀갔다. 2025년인 올해 여름까지 토마스가 그 사이 한국을 다녀간 횟수는 모두 다섯 번이다. 어느 때는 한 달 반을 머물기도 했고 어느 때는 일주일만 다녀갔다. 그 사이 토마스는 스물다섯 살이 되었고 나는 오십이 넘었다.
내 아들이 토마스보다 네 살밖에 어리지 않으니,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대로 내가 첫사랑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토마스만 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토마스가 나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나를 "정식!"이라고 부르는 것에 헛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오십이 다 된 내가 언제 이십 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생각하니 고마웠다. 토마스가 존칭을 쓰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께 등산도 하고 음식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더니 자신이 결혼할 때는 꼭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겠다고 했다. 나는 비행기값만 보내주면 벨기에든 어디든 가겠다고 화답했다. 이번에 다녀갈 때도 한 주일에는 팀원들 중에 토마스만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그러면서 토마스는 소금교회 교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라도 토마스와 좀 더 친밀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스물다섯의 토마스는 그 나이에 겪는 인생의 문제를 푸느라 힘들어했고,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틈 나는 대로 조언을 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외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를 매우 내향적인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자주 있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내 성격 때문에 토마스는 처음에 나를 대할 때 어려움을 느꼈다. 나중에 누나인 엘리자베스가 전해준 말은, 내가 무섭다고 했단다. 이제는 나를 무서워하진 않지만 한국식 눈치는 본다. 지난 6년 가까이 알고 지내면서 우리의 관계도 발전을 한 것이다. 나도 토마스를 더 이상 어린 친구로 대하지 않는다. 전에는 내 학생처럼, 청년부 일원처럼 그리고 내 아들처럼 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친구로 대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 같다. 이것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토마스가 내 조언을 듣지 않아도 크게 맘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처럼, 선생님처럼,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다는 내 생각은 늘 있다. 다만 그 조언을 토마스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토마스를 좋아한다.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호감을 같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호감이 느껴져야 관계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 호감만으로 관계가 발전되지 않는다. 함께 일을 할 때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 토마스와 나는 함께 영어캠프라는 일을 하면서 관계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관계가 발전하기도 하지만 관계가 아주 끝나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상대방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자녀나 학생처럼 대하면 그 관계는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친구로 여길 때만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조언을 하되 조정하지 않고, 친밀하되 무례하지 않은 친구가 될 때 그 관계는 계속해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