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교회를 시작하면서 성도들을 교육하는 목표를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교회 학교에서 자녀들을 키우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교육 목표가 필요했다. 성경에 충실한 교회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제대로 다니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교회가 교육을 잘못 시키고 있거나 그 사람이 그 교육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나오는 사랑을 좀 더 실천적으로 표현한다면 요즘 많이 회자되는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고 명령하셨다. 이 명령에서 "내 이웃을 내 몸같이"가 바로 공감이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동고동락(同苦同樂)"이 곧 공감이다. 공감의 정의는 매우 소극적으로 상대방에 내 감정을 이입한다는 의미이다(empathy). 이 단계에서 좀 더 나아가면 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는 것과 같이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한다(sympathy). 그리고 공감의 최고의 단계는 상대방의 고난과 짐을 함께 지는 것이다(compassion). 이것을 성경의 용어로는 긍휼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수난(passion)을 당하셨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는 이러한 공감의 모든 단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하는 사람으로 자라 갈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과거에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일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겪어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체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다. 무엇보다도 고난과 역경 그리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 본 사람은 어떤 일을 경험했느냐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을 공감한다. 이런 사람의 공감은 위로와 격려가 되고 용기를 준다. 이렇게 볼 때 공감하는 사람으로 자라 가게 하려면 일차적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책만이 아니라 몸으로 배워야 하고, 학교 안에서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배우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친구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해외에서 일정 기간 체류해 보는 것도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나 이주민 노동자들을 만나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대하여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공감 능력이 길러질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 사람은 최소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짐을 함께 지는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고난(苦難)"은 고통과 어려움이다. 모든 인생은 저마다의 산을 오르며 고난을 겪는다. 이때 지금 겪는 고난을 감내해야 더 높은 산을 오를 힘이 길러진다. 그리고 더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는 힘이 길러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짐을 들어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짐과 고난을 정직하게 감내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는 공감(compassion)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공감하는 사람으로 자라 가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어쩌면 부모의 조급함 때문에 우리 자녀들의 공감 능력이 자라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