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상호적(mutual)이다

by 최정식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 중에 하나는 사랑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분명히 상호적(mutual)이다. 일방적이고 헌신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도 그 관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적이다. 부모는 자녀를 마냥 이뻐하지만은 않는다. 그 자녀에 대하여 실망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 때문에 그 부모의 사랑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녀에 대하여 실망이나 분노의 감정이 전혀 없다며 그 사랑은 문제가 많은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하는 부모는 참다 참다 결국은 화병에 걸리고 만다. 또한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매우 이기적인 모습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또한 상호적이다. 그 사랑이 상호적인 것을 반증하는 표현이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를 낳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구원하셨다. 그 구원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는 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신들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길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사랑할 때 하나님은 당연히 질투하시고 분노하신다. 마치 배우자가 외도를 했을 때 우리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사랑이 상호적이라고 할 때 교제를 나누는 것도 상호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내가 이만큼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하는데 상대방이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실망한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감정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의사소통을 했느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사소통을 할 때, 내가 상대방의 반응을 요구하는 것으로 인해 "내 사랑"이 "give and take"식으로 저평가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에게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No"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상대방의 "No"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인격적이고 상호적인 사랑과 교제는 상대방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편안함 또한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이나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정리하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정당하게 그 사람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라. 그러나 그 사람이 "No"라고 말할 때 "Cool"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교제가 상호적인 사랑을 전제한다면 구제(도움을 주는 것, help)는 그렇지 않다. 구제를 할 때, 즉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우리가 상처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구제와 교제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도와준 나에 대하여 무심하더라도 괜찮다. 때때로 내 도움이 무색할 정도로 상대방에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구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때때로 구제가 교제가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호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방이 고마워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할 때 그렇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야 상처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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