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다는 것

by 최정식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다. 외국인인 내 친구 한 명은 두 번 한국을 다녀가면서 나에게 한국에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도 나처럼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단다. 한국에서 나와 함께 여행을 하며 내 동기,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나도 이런 친구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나는 웃으면서 "maybe"라고 답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하다. 게다가 자신의 시간과 돈을 손님을 위해 쓰는데 후한 편이다. 서양과 다르게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친구의 손님은 내 손님이라는 생각으로 극진히 대접한다. 이런 모습이 개인주의가 팽배한 서양 사람들 눈에는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와서 살면 그런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고 확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지만 그것이 꼭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정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고 결국에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누군가를 돕거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받고 살고 도움을 주며 산다. 도움은 사람 관계를 시작하기도 하고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때로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기도 한다. 동양, 더 좁게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도움은 관계의 필수조건이 된다. 쉽게 말해 두 사람이 있는데 서로 도움을 주고나 받는 관계가 아니면 그 관계는 그저 사무적인 관계이거나 여전히 피상적인 관계라는 뜻이 된다. 한자 "사람 인()"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은 본래 서로 기대며 살게 되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최초의 두 사람이 아담과 하와인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하와를 나중에 만드시면서 하와를 "돕는 베필(helper)"라 지칭하셨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도움으로 환원되지는 않기 때문에 도움이 관계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세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도 많다. 오히려 스트레스와 짐만 되는 관계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관계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주변에 도움을 받거나 주거나 하면서 관계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도움과 관계없이 학교나 교회에서 만나서 지인이 되고 친구 된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모든 관계들은 도움을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더 돈독해지기도 하고 아예 끊기기도 한다. 그러니 잘 돕고 잘 받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잘 도울 수 있을까? 첫째는 내 형편 껏 도와야 잘 돕는 것이다. 내 형편을 무시하고 돕다가 관계가 파국에 이른 경우가 많다. 내 형편이라는 것은 달리 내 힘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수영을 할 수 없는데 뛰어들면 결국 둘 다 죽고 만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더라도 그 사람을 건질 만큼의 실력이 안 되는데 구하려들면 역시 둘 다 죽고 만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 특히나 재정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때 이런 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내 빚의 이자도 못 내고 있는데 친구라고 또 빚을 내서 돕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과 가정에 무책임한 것이다. 내가 빚을 내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형편껏 도와야 관계도 지킬 수 있다. 이것은 꼭 물질적인 것만 해당하지 않고 정서적인 면에도 해당한다. 최근에 한 성도분이 오랫동안 몇몇 선교사들을 도와 왔었는데 그분들을 정리하기가 힘들다며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 선교사들은 성실히 소식을 전하고 때때로 가정사를 들어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것이 이제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는 그 성도분에게 지금까지 그들을 도운 것으로도 이미 훌륭하니 정리를 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체력처럼 심력(心力)도 한계가 있으니 자신의 심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돕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도움을 끊는 것은 잘못된 일이 결코 아니다. 두 번째로 잘 돕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주관하려고 하면 안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돕다가도 돕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도움을 받는 상대방을 주관하려는 태도를 갖기 쉽다. 내가 상대방을 주관하려고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조언을 할 수도 있고, 돈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도움을 받는 사람이 내 말을 명령처럼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혹 그렇다면 나는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미끼를 던진 것이 된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No!"를 쿨(cool)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잘 돕는 것이다.

반면에 어떻게 하면 도움을 잘 받을 수 있을까?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누군가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의무가 없는 일을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 살 때,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 중에 도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곤 했다. 그들은 상대방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때때로 전철 안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한다. 이것은 구걸이 아니라 갈취다. 이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결코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도와주면 고마운 것이니 감사만 할 따름이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돕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내가 원하는 만큼 돕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하면 안 된다. 그에게는 결코 나를 도울 의무가 있지 않다. 그러니 도움을 잘 받는 방법 또한 역시 상대방의 "No!"를 쿨(cool)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도움을 잘 받으려면 도움의 횟수에 민감해야 한다. 돕는 횟수가 잦아지고 돕는 기간이 길어지면 돕는 사람 누구나 부담을 갖게 된다. 진심으로 "이제 그만 도와도 된다"는 말을 먼저 건네라. 그러면 도움이 끊기더라도 관계는 결코 끊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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