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둘째와 셋째 아이는 여전히 인도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나는 학교를 방문할 때 종종 내 아이들이 생활하는 기숙사를 방문해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곤 한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니 한국 음식이라고 해봤자 라면, 참치주먹밥, 김밥 그리고 김치 정도가 최대치다. 뭔가를 만들어 줄 상황이 안 되면 KFC 버거처럼 배달 음식을 시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아이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기회를 얻곤 한다. 얼마 전에 해준 이야기는 친구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가장 큰 관심사는 친구다. 남자아이들은 운동이나 온라인 게임처럼 무엇인가를 친구와 함께 하는 것에 집중하는 반면에 여자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여자 아이들 사이에는 누가 내 절친(베프)이냐가 중요하다.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전체 무리에 자신이 속하느냐의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아들인 첫째는 운동을 잘해서 그런 지 늘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그런 아들은 단 한 번도 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딸들인 둘째와 셋째는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지금까지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가 친구 문제다.
그날 나는 셋째의 친구들에게 나무를 예로 들었다. 묘목을 심을 때 지금은 나무들이 작지만 나중에 크게 자라기 위해서 나무들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둬야 한다. 십 대에 사귀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10년 이상은 계속 자라야 하는 나무들과 같으니, 아직은 서로 작은 나무들이지만 친구와 친구 사이에 안전한 거리가 필요하다. 어느 한 친구가 다른 한 친구와만 너무 가깝게 지내면 결국은 두 친구 모두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아무래도 서로에 대하여 소유욕을 가지게 되고, 서로에게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다. 이것은 꼭 동성 친구만이 아니라 이성 친구에게도 해당한다. 내 감정이나 혹은 서로의 감정에만 충실하다 보면 각각의 인생을 너무 일찍 서로에게 종속시키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각자의 인생과 그 미래는 불확실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건강한 관계는 내가 아무리 좋더라도, 혹은 서로가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상대방의 인생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에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두 나무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느 한쪽 나무가 너무 크면 작은 나무가 받아야 할 햇빛을 가린다. 다른 나무가 맞아야 할 비도 막는다. 그러니 안전한 거리는 상대방 나무가 햇빛과 비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안전한 거리는 상대 나무가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서 나무가 위로 옆으로 자라는 데도 필수적이다. 그러니 가까이 가고 싶다고 가까이 가는 것은 너무 이기적일 수 있다. 상대방의 공간을 배려해 주고 다가가야 한다.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친구도 때때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안전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안전 공간이 무너지고 둘 사이에 안전 공간이 없으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친구 사이에 필요한 안전거리와 안전 공간은 꼭 십 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주고받은 많은 상처들은, 어쩌면 각각의 사람들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이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