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없어요

by 최정식

로렌스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는 4-6학년 남학생들 40여 명을 돌보는 기숙사 사감(housemaster)을 겸하고 있었다. 매년 4월이면 신입생들이 들어왔는데 우리나라 나이로 10살이 안 된 아이들이 처음으로 집을 떠나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들어오는 일이었다. 몇 백 킬로미터만이 아니라 삼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온 학생들도 있었다. 첫 주에는 매일 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가족이 그리워서 울었다. 어떤 아이는 한 달이 지나도 계속 밤마다 울곤 했다. 대부분은 5월 말에 첫여름방학을 맞을 때 즈음이면 학교 생활에 적응을 했다.

아이들은 가족과 떨어진 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 이제 학교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그것은 친구 문제다. 기숙학교의 친구 문제는 두 가지 이유에서 통학을 하는 학교의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 하나는 부모랑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상대적으로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24시간 내내 40여 명의 친구들을 계속해서 만나니 친구들이 관계의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한 학생에게 학교 생활에서 뭐가 제일 힘든가를 물었다. 그 친구는 "친구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내 둘째 아이가 로렌스학교에 다닐 때도 친구가 없다고 울면서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기숙사에 살지는 않았지만 기숙사와 붙어있는 집에 있는 교직원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언제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도 내 딸은 친구가 없다고 했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인도를 떠나고 여전히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는 막내딸도 한 동안(아마 지금도) 친구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내 맘 같은 친구가 없는데 여전히 여러 친구들과 24시간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10대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사춘기에 겪고 나면 사라지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50대에 접어든 나도 때론 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없어서 안타까운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50대의 나는, 70대가 되면 더더욱 외로워질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니 어쩌면 친구 문제는 평생의 문제일 것이다. 이 친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인생이 훨씬 행복할 것 같다.

나는 "친구가 없어요"라고 문제를 털어놓은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많은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 친구는 한 명만 있어도 된다." 둘째와 막내에게도 동일하게 말했다. "우리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없고 친구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나에게는 한결같은 한 명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 아내다. 지난 20여 년간 아내는 변함없는 내 친구였다. 인도 땅에서 10여 년을 사는 동안에 아내는 내 외로움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현실의 문제에 씨름하고 있는 지금도 내 아내는 항상 내 편이자 친구다.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된다 말에 10살의 어린아이는 안도했다. 지금 당장 그 한 명의 친구가 없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내 두 딸들도 조금은 안심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그 말을 누군가에 건넬 때마다 나는 내게 있는 친구 한 명 때문에 더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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