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 나를 지탱하는 힘
2021년 3월 7일. '에디터 이소희'로 아트인사이트에 첫 정식 글이 기고되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200여 편의 글을 써왔다. 하지만 요즘 글쓰기에 대한 매너리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변화를 느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글을 계속해서 써오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달려오던 중, 아트인사이트에서 매거진 프로젝트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글쓰기를 점검해볼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처음 글을 쓰던 때를 돌이켜보면, 글 한 편 한 편에 깊은 경외심과 정성을 다했다. 첫 글이 기사로 검색되고 헤드라인에 오르던 순간의 경이로움은 잊을 수 없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아 다듬었다. 수없이 읽고 고쳐 쓰며, 노트북 앞에서 밤샘도 자처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200여 편에 가까운 글을 써 내려오면서, 글을 대하는 태도는 무례해지고 있었다. 이전만큼 긴 시간을 보내지도 않고, 열 번 넘게 하던 퇴고는 두어 번의 수정으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빠르게 작성하고 완성하는 것이 능숙해졌다고 좋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요령을 부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글쓰기의 초심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감정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문화예술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예술을 향유할 때 느껴지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무엇인지, 본질이나 참뜻을 이해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한 기분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흘러가 버리는 감정의 일렁임을 글로 정착시키고 싶었다. 감정에 대한 탐구, 더 나아가 이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들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찾고 싶었다. 일기장, SNS, 블로그에 나의 감정과 이야기를 무작정 써내려갔다.
혼자서만 쓰던 글에 허기가 질 무렵 세상과 소통할 기회가 찾아왔다. 아무리 좋은 글이더라도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 글은 자신이 가진 힘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다. 그만큼 글은 얼마나 많은 이에게 읽히느냐에 따라 생명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트인사이트에서 몇 년간 글을 쓰다 보니 기분 좋은 변화들이 생겼다. 들여다보지 못했던 관심 밖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좋은 기회로 문화콘텐츠를 향유하고 글을 쓰며 예술의 매력을 알아가다 보니 점점 예술이 좋아졌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예술을 알리고 싶어졌다. 어떤 일을 할지 방황하고 있던 차에 아트인사이트에서 계속 쳐온 타이핑은 내 인생의 방향이 되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기고하는 글들은 여러 포털 뉴스 탭에서 기사로 검색되었고, 몇몇 글에서는 다양한 피드백이 달렸다. 나의 글로 지식과 인식의 변화를 말하고 있었다. 글로 행동을 만들어낸 '영화 리뷰를 보고 영화를 보러 왔다'라는 댓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글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 되었다. 내가 찾은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상호작용하는 것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소통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를 위해 적기 시작했던 글은 이제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풀어내며 삶의 가치를 논하게 되었고, 예술전시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 기획의 의미를 되짚으며 현재 사회 문제와 우리가 갇혀 있는 관념,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만 머물렀던 글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글은 다양한 의미가 되어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에디터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컬쳐리스트가 된 지금, 매년 나는 성장하고 글도 성장해갔다.
이 매거진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글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고 무엇을 주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한 단어, 한 문장에 정성을 들이던 초심을 되새기며, 지난 시간 글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무뎌졌는지 돌아보았다. 나의 자식처럼 여기던 글들을 무례하게 대했던 것은 아닐까. 쉼 없이 빠르게 완성하는 요령에만 집중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타이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자그만 재주는 마음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글을 쓰면 마음과 감정이 정리된다. 하루하루 지나가던 삶의 조각들을 마치 보자기 끈 묶듯이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의 글이 나를 정리하고, 나를 단단히 지탱한다. 이 깨달음과 함께 나는 항상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내가 추천한 글이나 구절을 보고 변화하거나 감동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나의 글이 그 사람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 깊은 보람을 느낀다.
지금처럼 힘든 시대에 무릎이 꺾이려 하거나 엎어지려 하는 이들에게, 나의 글이 작은 용기가 되고 마지막 1그램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들어오는 피드백을 보며, 글쟁이로 사는 것이 참 좋다는 걸 느낀다. 나의 글이 나를 지탱하고, 나아가 누군가를 지탱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평생 정중하게 타이핑하며 글쓰는 글쟁이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