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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May 01. 2024

울릉도 여행기 2 - 울릉도 트래킹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나리분지, 큰바람이 머무는 태화해변

울릉도가 제주도 3분의 1 크기의 섬이라는 몇 줄의 간략한 글만 읽었습니다. 섬에 도착해서 첫 코스인 봉래폭포를 가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고각의 도로에 남편과 저는 많이 놀랐고, 주차장부터 폭포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 그 길도 급경사 자체입니다. 이미 온몸에 땀이 쏟아지고,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한숨을 쉬며 이 경사길을 어렵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옵니다. 다리 한쪽이 불편하신 어르신도 지팡이를 짚고 올라오고, 양쪽 다리가 관절염으로 동그랗게 휘어진 할머님도 악착같이 올라오는 모습에,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몸이 건강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의 마음, 모든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봉래폭포길을 오르며 저는 제가 도착한 이 섬이 '모든 길이 급경사로 이루어진 고각의 섬'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유독 오르막길을 싫어하는 저는 울릉도의 곳곳을 걸을 때마다 태양을 향해 직각으로 올라가는 듯한 착시까지 느껴졌습니다.

봉래폭포길

여행 둘째 날 오후에 나리분지 트래킹, 셋째 날 오후에 태화해변 대풍감 트래킹을 했는데, 나리분지로 이동할 때 남편은 "울릉도에서 운전하면서 10년은 늙은 것 같아"라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특히 우리 차는 밀림 방지가 안되어 있어서 고각에서 멈출 경우 뒤로 살짝 밀린 상태에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문제는 길 곳곳이 공사장 먼지로 잔뜩 미끄러운 상태라는 겁니다.


나리분지에 도착하니 굵은 비가 내리고, 평생 트래킹 할 때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저와 남편은 능숙하게 비옷을 입고 6킬로미터 거리의 알봉 둘레길을 걸어갑니다. 흙과 나무와 다양한 식물이 "나는 지구의 주인이에요"라고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울릉도에서 무방비 상태로 쉼 없이 맞이하는 다채로운 날씨는 제가 이 별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줍니다. 여행은 제게 이런 의미입니다. 도시환경과 나를 둘러싼 복잡한 환경에서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나 자신과 수많은 관계들을 적당한 크기로 돌려놓고, 거기에서 한 걸음 나와 자연의 한 점으로 존재하는 소중한 나를 발견하는 겁니다. 내 키만 한 풀, 나와 나무, 나를 둘러싼 안개가 어떠한 유불리 없이 전부 평등하게 존재합니다. 더 나아가 나와 아이들의 평등함, 나와 타인의 평등함을 다시 새기는 시간입니다.

나리분지 알봉 트래킹


셋째 날 오후의 태화해변은 10분간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가, 직각에 가까운 급경사로를 1시간 동안 걸어 내려오는 코스로 선택하였습니다. '바람어르신~'이라는 고개 숙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바람이 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모노레일이 도착하는 전망대와 20분간 두 발로 이동해야 하는 절벽 전망대, 야생화가 가득한 하산길은 꼭 추천하고 싶은 트래킹 코스입니다.


태화해변 대풍감 트래킹


서울에 계신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나도 울릉도 너무 가보고 싶네."

"엄마, 관절염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해. 너무 다 경사야. 발목 부러질 거 같아."

"그래도 지금이 제일 건강니까 가봐야지"

순간 놀랐습니다.

칠순이신 엄마께서 일 년간 발목관절염으로 너무 고생하셔서 이런 힘든 여행은 생각도 못하실 줄 알았는데, 엄마는 오히려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면서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젊은 날이라는 걸 실감하신 겁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젊은 날'

어쩐지 엄마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유독 당일 여행상품을 부지런히 신청해서 솔로여행을 다니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셨는데, 아프면서 오늘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봉래폭포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올라오신 수많은 어르신들도 제 눈에는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고, 난간을 꽉 잡고 한걸음 한걸음 힘든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저희 엄마처럼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고 건강한 오늘을 누리는 한 분 한 분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들 웃으면서 그 오르막을 올라오셨던 겁니다.


저는 이제

"엄마, 나중에 가. 관절염 좋아지면"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엄마, 하루라도 빨리 갔다 와~ 오늘이 엄마도 나도 제일 젊은 날이니까ㅋㅋㅋ"

제 마음이 이번 여행을 통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울릉도의 힘>인 걸까요ㅎㅎ


브로콜리처럼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깊고 푸른 섬 울릉도.

제주도보다 훨씬 작은 섬이지만, 조금도 손에 잡히지 않는 인식 저 너머의 이상하고 신비한 섬..


-맘디터의 울릉도 트래킹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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