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디터 Nov 06. 2024

BGM Song from a secret garden

결국 집에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지하철역에 서 있다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지는 암호로 변했고, 눈앞의 모든 장면은 90도 각도로 기울어져 나는 서 있기가 힘들었다. 잠시 후 내 눈앞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모든 연극의 결말을 알리는 커튼이 위에서 아래로 붉게 붉게 흘러내렸다. 그다음에 기억이 나는 건 사람들의 웅성거림, 알 수 없는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던 것 같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몸 안에서 소리를 내는 모든 길은 그 문이 닫힌 것만 같다. 

깊은 잠에 빠져서 눈을 뜨니 회색 벽지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도 끝도 없는 어둠 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의 잠이었고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아는 모든 신을 찾았다. 그러나 내가 신을 부르면 그 신이 다시 나를 부르는 공허함. 어쨌든 내 몸을 빠져나간 생명은 돌고 돌아서 다시 나를 찾아내었다. 

그러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나를 빠져나간 내 생명은 내가 맞는지, 내가 아닌 건지 여러 번 확인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생명 속 저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여전히 집에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나저나 작은 마당에 가꾸어놓은 내 정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주일만 지나도 죽는시늉을 하는 스파트필름,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오르비폴리아, 가시가 다 뽑혀서 초라하지만 아직도 자기가 멋진 줄 아는 선인장, 하늘을 향해 출산을 하는 듯 잎이 계속 갈라지는 몬스테라. 로즈마리, 애플민트 수많은 허브들은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나 때문에 놀랐을 아이들에게 식물의 안부를 물을 순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잘 살아 있는지, 햇살과 비와 대지가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지.


병원 로비. 딸은 퇴원 수속을 밟고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이동을 한다. 내 몸은 나의 지시에 묵묵부답이다. 몸의 침묵 앞에서 나는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모든 것이 멀뚱하고 불편하다.

딸은 차에서 내리는 내 팔을 조심스럽게 받쳐준다. 넘어지지 않도록 발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차에서 내린다. 무릎에서 뼈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만, 나 자신을 말라가는 장작더미로 인정하는 것이 나의 회복보다 덜 아픈 삶일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는 데, 내가 마지막으로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이 오르비폴리아 앞에서 잎을 어루만지며 웃고 있다. 수염도 하얗게 변하고, 늘어난 피부 가죽에는 온통 검버섯이 피어올랐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다행이라며 웃는다. 나도 웃었다. 그 사람을 스쳐 지나쳐서 현관문 계단을 향해 발을 디딘다. 


"엄마, 뭘 보고 웃어?"

"아무것도 아냐."

"장모님, 신기하네요. 병원에 계신 한 달간 장모님 정원에 누가 물을 준 것처럼 살아있어요. 왜 저렇게 싱싱해요? 풀잎 향기도 너무 좋아요."

그 사람은 햇살이 뜨거운 듯 손으로 태양을 가린다. 모든 햇살은 그 사람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뒤돌아서서 그 사람을 한번 더 보고 싶지만 애써 지나친다. 한 번쯤은 마주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지만 볼 수도 없었고, 잊겠다고 다짐해도 매번 꿈에 찾아오던 사람 아닌가. 

인연이 아닌 인연, 우연 보다도 못한 우연. 이렇게 지나고 또 지나는 게 익숙해지면서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 우편물이 많이 왔어. 그리고 엄마 핸드폰에 어떤 분의 부고 문자도 와 있더라고. 너무 정신이 없고, 내가 성함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조의금 안 보내고 그냥 넘어갔네. 누군지 확인 안 해도 돼?"

딸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말없이 사양한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저 창밖에 비치는 달은 왜 구름 아래로 떨어졌을까.

잠이 오지 않아 한참 후에 지팡이를 짚고 마당으로 걸어 나간다. 저 멀리 오르비폴리아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는 잎에 묻은 흙들을 털고 있었다. 나는 힘들게 입술을 움직인다.


"나의 정원이에요"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바람이 내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오르비폴리아가 나를 당신에게 안내해 줬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지.'


그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모습으로 나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나는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참 이상해요.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신에게 가는 길은 내 삶에 없었어요."

그는 잎사귀에 흘러내리는 달빛을 주워 담으려는 듯 오르비폴리아에 손을 갖다 대었다.


나는 우리의 마지막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는 늙어서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지만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당신도 처자식과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렇게 굳이 할 말도 없는데, 왜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당신의 처가 있는 곳으로 떠나겠네요. 그녀가 얼마나 그리웠겠어요. 그녀에게 무사히 잘 도착하기를 기도해 줄게요, 당신.'

그가 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마치고 오르비폴리아를  바라보는 내 눈에 차가운 눈물이 흐른다. 그가 핏기 없는 손으로 내 볼을 닦아 주었다. 이제 그만 쉬라면서 내 손을 이끌고 천천히 현관문 계단을 오른다.


오랜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났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파란 하늘에 은비가 내리고, 태양과 달과 별은 은빛이 흐르는 강가위에 살포시 떠 있다.  

점점 멀어지는 나의 정원의 오르비폴리아에서 새 잎이 돋아나온다. 

내 뒤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난다. 너무 천천히 열렸다. 나는 힘껏 뛰어가서 두 팔을 벌리고 문을 활짝 젖혔다.

또다시 이어지는 나의 정원. 

저 멀리 누군가 서 있다. 

당신과 나의 세상은 온통 오르비폴리아 숲이었다.


- 맘디터의 단편 Song from a secret garden




  

 

  

 


이전 02화 BGM 제니(JENNIE) You&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