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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Apr 01. 2023

아이가 울었다

20230224



정신과를 다녀왔다


지난주 수요일에 약을 받아오고 약 열흘만이다.

다행히 전처럼 약에 대한 부작용이 크지는 않았었고 더 많이 쳐지지는 않아서 별 걱정 없이 갔다.

스트레스검사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원장님은 수치가 너무 떨어졌다며 약이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잠은 잘 자냐고..

불면증 없이 잠들고자 하면 곧 잠이 들고 아침에도 너무 힘들지는 않아서 잘 자고 있다고 했더니 몇 시쯤 잠이 드냐고 했다.

12시 넘어서 잔다고 했더니 그러면 절대 약을 찾을 수도 나을 수도 없다며 자려고 노력해 보라고 했다.

나는 일찍 자려는 노력을 단 하루도 한 적이 없었어서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평일에 쉬는 날.

재작년에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중간중간 둘째 아이가 자기 수학과외를 해줄 수 있냐고 했다.

곱셈과 나눗셈이 어렵다고.

그래도 미뤘다. 그깟 공부가 뭐라고...

곱셈 나눗셈이 뭐가 그리 어려울까 생각하며 별일 아닌 듯이 넘겼다.

약을 끊고도 사실 아이 공부를 봐주면 다시 내 상태가 안 좋아질까 봐 미뤄왔는데, 이번에 아이 진단평가 문제집을 사주니 아이가 진지하게 물어왔다.

자기 수학만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어딜 가나 농담처럼 우리 둘째는 아직 구구단도 모르는 거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아이는 그게 진심으로 힘들었나 보다.


오늘 나눗셈을 봐주는데 헤매는 것 같아서 두 자릿수나 한자릿수 쉬운 나눗셈을 알려줬다.

그것도 두려워하는 것 같아서 작은 칩들을 꺼내 모으기 가르기를 가르쳤다.

아이는 다행히 곱셈과 나눗셈의 기본원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식 몇 가지를 보여주며 두 자릿수에 한자릿수를 나누는 나눗셈을 풀어보라고 했다.

세문제 정도를 푼 아이가 울었다.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이 없다고, 5학년에 가면 더더욱 풀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했다.


너무나 미안했다.

물론 내 삶도 중요하지만 엄마로서 아이를 이렇게 힘들에 했다는 게 미안했다.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우리 둘째 나눗셈을 몰라서 힘든  아니라 훈련을  했을 뿐이야. 둘째 모르는  아니라 많이 풀어보지 않아서 두려운 거야.

엄마가 2 가까이 아픈 바람에 우리 둘째 함께 훈련해  훈련사가 없어서 너무 오래 쉬어서 그래~

엄마가 처음부터 다시 같이 해주면 어떨까?

엄마 이제 건강하니까 천천히 다시 시작해 보자~

라며 달랬다.


그리고는 문제집을 사러 가자는 얘기에 아이는 다시 울었다.

나는 문제집이 풀기 싫어서 우냐고 했더니 5학년 문제집은 사도 풀 수 없을 것 같아서 운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 우리 시우가 훈련할 수 있도록 한자릿수 곱셈 나눗셈 문제집부터 사서 풀어볼 거라고 했더니 아이가 눈물을 쓱 닦으며 그건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에게 자신감이 부족한 건 경험이 부족해서였으리라....

나의 우울증이 나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아이에게도 2년 가까이 이런 생채기를 만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잠도 일찍 자고 약도 잘 챙겨 먹어서 단단하고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은 10월에 빨고 한 번도 빨지 않았던 이불빨래를 했다.

10년이 넘은 라텍스 요는 빨았더니 삭아서 바스러져서 버렸고 지금은 이불들이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돌아가고 있다. 한 달 가까이 이불이 깔려 있던 방바닥에는 수많은 부스러기와 머리카락 먼지들이 한데 뒤엉켜있었다. 이곳에서 아이를 껴안고 매일 잠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그곳에서도 고맙게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

무기력과 우울함을 미안함으로 이겨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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