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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Apr 24. 2024

직업의 보람을 느낀 날

써마지, 울쎄라, 더마톡신, 입술필러


퇴근 후, 맡겨둔 아이를 찾으러 친정을 찾았다. 문을 열자  '엄마 왔다!' 하는 친정엄마의 소리와 함께 아들이 우다다 뛰어왔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다 함께 저녁을 먹는 중, 엄마가 말했다.


- 요새 피부가 자꾸 처져서 나이 들어 보인다. 뭐 좀 좋은 거 없니?


나는 보톡스 마케터 10년 차다. 비슷한 질문을 이골이 날 정도로 들었지만, 질문자가 내 아이를 대신 봐주는 친정엄마일 경우엔 훨씬 진지하게 대답해야 한다. 매의 눈으로 엄마 얼굴을 진단했다. 육아에 지친 60대 중년 여성이 보였다. 얼굴 주름은 물론이고 눈 밑에 튀어나온 지방살과 울룩불룩 처진 턱 윤곽이 엄마를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드디어 퇴직했더니 이젠 딸자식 손자까지 봐주느라 지속된 피로와 노화가 내려앉은 얼굴. 울컥하는 미안함을 삼키면서 전문가답게 말했다.


- 이건 보톡스로 못 없애. 엄마도 이제 레이저 세계에 입문할 때가 됐네. 주말에 나랑 같이 건대 좀 가자!


그거 아프고 비싼 거 아니냐는 엄마의 물음에 'No pain, no gain'이라 답하면서 60대 여성 레이저 시술을 검색했다. 보톡스나 필러면 몰라도 레이저는 생소한 영역이었다. 내일 출근해서 자료 공부 좀 해야겠다며 자리를 파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BD팀에서 공유해 줬던 레이저기기 시장조사 보고서를 펼쳤다. 종류도 많고 원리도 복잡했다. 일하면서 자주 들었던 레이저기기 이름을 몇 개 뽑아서 시술 원리와 병원, 금액을 조사했다.


가장 인기 있는 리프팅 레이저는 울쎄라와 써마지였다. 특히 윤곽 처진 살 교정 효과가 강력한 건 써마지였는데, 그만큼 시술 비용도 비쌌다. 언뜻 듣기로는 써마지 통증이 워낙 심해서 민감한 사람들은 수면마취까지 받고 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주변 시술 경험자의 탐문 조사에 착수했다. 동종 업계인 만큼, 유경험자마케팅사업부에도 차고 넘쳤다.


- 울쎄라 받아봤는데 생각보다 덜 아팠어요. 그거보단 여드름 흉터 치료한다고 프락셀 받을 때가 진짜 아팠어요.

- 써마지랑 울쎄라 둘 다 받아봤는데 효과는 써마지가 더 오래간 것 같아요. 근데 더 비싸요. 거의 300만 원 줬던 것 같아요.

- 예전에 써마지 받았다가 올해 다시 는데, 기계 종류가 바뀌었던데요? 요즘 나온 기계는 좀 덜 아팠어요.


다방면의 조사 결과, 60대 중년 여성의 노화로 인한 살 처짐에는 써마지 윤곽 리프팅이 제일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써마지 단독 시술보단 다른 시술과 병행하는 패키지 프로모션으로 운영되는 듯했다.


다음 스탭으로 집 근처 건대입구역 인근의 시술 병원을 고민했다. 최근 보톡스/필러 학술 자문을 구하면서 알게 된 원장 한 명이 생각났다. 최신 트렌드에도 밝고 손재주도 좋은 의사였다. 병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마침 엄마에게 적합한 시술 패키지가 이벤트 중이었다.


'울써마지 : 울쎄라 300샷 + 써마지 FLX 600샷 + 얼굴 전체 더모톡신'


이번 주 토요일 오전 상담으로 예약했다. 예약자는 일부러 내 이름으로 했다. 상담 시 원장에게 인사하면서 우리 엄마라고 소개하면 더 잘해줄까 싶었다. 엄마에겐 서울 동부권에서 제일 잘하는 의사로 섭외했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예약 스케줄을 알려줬다.




시술 상담 당일, 호기롭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련된 유니폼을 입고 환자를 맞이하는 병원 스탭들의 인사가 익숙했다. 오늘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손님으로 찾은 병원이다. 자신 있게 대기표를 끊고 엄마와 함께 시술 가이드북을 보면서 '요 시술을 받을 거야'라고 설명해 줬다.


곧 우리 상담 차례가 됐다. 쪽머리를 한 상담실장이 웃으면서 우리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60대 엄마가 환자라고 소개하니 보톡스, 필러, 레이저, 실리프팅 등 최근 병원에서 밀고 있는 시술을 종류별로 소개했다. 잠깐 듣다가 조용히 말했다.


- 저기.. 제가 A사 직원인데요. 울써마지(울쎄라 & 써마지) 리프팅 알아보고 왔습니다.


상담사가 당황해서 대답했다.


- 아! A사 직원이셨구나. 진작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울써마지 패키지 말씀이시죠? 효과야 너무 잘 아실 테고.. 더마톡신이 포함되는데, A사 보톡스로 하시겠어요?

- 네, 그걸로 해주세요.

-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원장님 상담 연결하겠습니다.


A사 직원임을 밝힘과 동시에 상담은 순식간에 끝났다. 엄마의 뿌듯해하는 눈빛을 받으면서 10분쯤 기다린 후, 원장 상담실로 안내받았다. 예전에 영업사원과 함께 미팅했었던 여자 원장이다. 내 얼굴을 기억하는 건지 혹은 상담기록에 남겨진 A사 직원 메모를 본 건지, 원장은 밝은 눈인사를 보낸 뒤 바로 상담을 이어갔다.


- 어머님 얼굴 상태에는 울써마지가 잘 맞을 것 같아요. 시술을 받고 나면 턱선부터 얼굴 전체가 리프팅돼서 생기 있는 인상이 될 거예요. 그리고, 음.. 팔자주름도 조금 있으시고 입술 지방도 빠졌는데, 필러도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훨씬 젊고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필러까진 생각 못했다. 엄마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의사도 내가 결정권자인 듯 나만 쳐다봤다. 필러까지 추가하면 분명 돈이 더 들겠지만, 기왕 효도 목적으로 병원까지 찾았는데 하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 네, 필러도 같이 할게요.

- 잘 생각하셨어요. 필러도 A사 제품으로 하실 건가요?

- 네, 저희꺼로 해주세요.

- 좋아요. 그럼 밖에서 상담실장이랑 비용 얘기해 보시고 시술 날짜 예약하시면 됩니다. 예약날에 뵐게요.


원장실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상담실장이 상담실로 안내했다. 울써마지에 A사 제품으로 더마톡신이랑 팔자/입술 필러 시술 예정이라고 상담 내용을 요약하더니, 계산기를 두드려서 시술 비용을 보여줬다.


'4,671,000'


순간 표정 관리가 안 돼서 황급히 얼굴 표정을 정리했다. 옆에서 엄마가 내 소매를 잡아끄는 것이 느껴졌다. 말은 안 해도 '너무 비싸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차마 비싸서 못하겠다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다. 육아로 늙어버린 엄마의 효도를 위해서, 내가 아는 병원으로, 내가 직접 같이 상담까지 받고 확인한 금액 아닌가! '보톡스 & 필러 샘플을 들고 올 테니 가격 좀 깎아주세요'라고 네고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차라리 엄마 딸로서 그리고 A사 직원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기로 했다.


- 여기 카드, 일시불로 해주세요.


떨리는 손으로 카드 단말기에 사인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시술 예약날짜를 잡았다. 당일엔 엄마 혼자 오실텐데, 대략적인 시술 시간과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한 후, 아까처럼 엄마 손을 잡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이 더 힘 있고 따뜻했다.


- 딸, 고마워! 벌써 젊어진 기분이다. 엄마 떨려!


마주 보며 웃었지만 속으론 아직도 떨렸다. 머리에서 4,671,000원 숫자가 떠나질 않았지만, 엄마에겐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효도도 돈이 많이 드는구나. 남은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




일주일 뒤 토요일, 엄마의 시술 날짜가 되었다. 시술 한 시간 전에 원장에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철부지 딸 회사 생활 하라고 아이 봐주다가 엄마가 많이 늙었으니 잘 부탁드린다는 청탁 메시지였다. 발송한 지 5분도 안 돼서 원장의 답장이 왔다.


- 네네 저희 엄마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잘해드릴게요^^


긴장했을 엄마에게 카톡 메시지를 캡처해서 보내줬다. 전화로 시술 잘 받고 오라고 인사하고, 나는 주말 아들 육아에 돌입했다.


어느새 3시간이 넘게 지났다. 점심 먹고 아이 낮잠을 재우고 나니,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사진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얼른 사진부터 확인했다. 시술 효과가 좋아 보였다. 눈과 입술이 약간 부었지만 엄마는 만족한 듯 한껏 미소 지은 얼굴이었다. 울쎄라랑 써마지는 시술 직후 붉은 기가 적다더니, 확실히 일상생활이 바로 가능해 보였다. 더마톡신 때문인지 얼굴 중간중간에 주사바늘 멍이 보였지만, 작고 연하니까 비비크림이면 가려질 것 같다. 시술 상태를 확인하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청 오래 걸렸네. 좀 어때?

- 야, 진짜 너무너무 아팠어. 의사가 얼마나 꼼꼼하게 해 주는지, 옆에 간호사한테 대칭 어때 보이냐고 계속 확인하면서 주사도 엄청 많이 놓더라. 필러보단 써마지? 그거 정말 아팠어. 눈물 나는 거 간신히 참았다.

- 그래도 사진으론 시술 잘 된 것 같은데, 이따 저녁에 가도 돼? 얼른 보고 싶다! 팔자랑 입술에 필러 들어가서 좀 얼얼할 건데 손으로 만지지 말구.

- 그래, 알았어. 진정팩을 한참 붙여줘서 많이 나아졌어. 이따 보자.


저녁까지 못 참고 오후 4시에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웃으면서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 아까보다 붓기가 줄어들어서 더욱 밝고 환해진 얼굴이었다.


- 오, 진짜 시술 잘 됐네. 입술에만 필러 2cc 들어갔다는데 멍도 없고 엄청 자연스럽다. 벌써 얼굴이 좀 팽팽해진 것 같은데?

- 야, 돈이 얼만데 효과가 좋아야지! 아유, 레이저 필러 보톡스 시술마다 대기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아주 힘들어 혼났다. 원장이 엄청 신경 쓰더라.


함께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의 무용담을 들었다. 이상할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내일 사찰 합창단에서 혹시 사람들이 알아보진 않을지 긴장 반 기대 반 표정이었다. 속속들이 집에 도착하는 아빠와 동생들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나 어때?'를 물어보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10년 직장 생활 중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내 직업의 의미를 한층 실감했다. 엄마에게 젊음의 기쁨을 다시 한번 안겨주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직업인이겠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다음 날, 절에 다녀온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들뜬 목소리로 '다들 긴가민가 하더니 얼굴에 뭐 했지!'하고 알아봤다며 신나 했다. 한눈에 몰라볼 만큼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예뻐진 티가 나는 게 기쁜 것 같았다. 우리 딸이 해줬다니 병원 소개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단다. 나는 내년에도 주기적으로 받자는 말을 하고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는 회사 생활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 보람과 자부심을 오랫동안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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