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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Sep 07. 2023

슬기로운 주말 산책

Feat.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미셸 르 방 키앵

* 인용문에 표시된 책 페이지는 전자책을 기준으로 기재했습니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이론"
인간의 뇌는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존재, 즉 자연을 사랑하도록 진화했다.
 by 에드워드 윌슨, 생물학자


1. 용마산 데크길 산책


긴장을 풀고 안정을 얻는 데 숲 속 걷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동양인들은 숲 속 산책을 말 그대로 삼림에서 하는 목욕을 뜻하는 '삼림욕'이라는 탁월한 표현을 사용한다.
(p. 31)


내가 사는 면목동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자연 산책로가 많다는 점이다. 용마산과 중랑천의 배산임수 지형 덕분에 주민들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서 산과 강으로 언제든지 산보를 나갈 수 있다.


나는 산을 더 좋아한다. 어릴 적 초등학생 시절, 주말마다 할아버지를 따라서 약수를 뜨러 용마산을 오르던 억 때문일까? 해발 348m의 제법 숲이 울창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용마산은 운동 겸 산책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동네 뒷산이다.


내가 어른이 되는 세월 동안 용마산도 많이 변했다. 산둘레를 따라서 완만한 데크길이 설치되었고 계곡도 깨끗하게 정비됐다. 요샌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높아져서 주말 오후면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나는 동네 주민이기에, 언제든지 집 옆의 데크길을 걸을 수 있다. 주말엔 사람이 적은 시간을 골라서 숲 속 산책을 즐긴다.


오르막 깔딱 고개에 헉헉대다가 산 중턱에 다다르면 내심 우쭐해진다. 여기까지 올라온 나 자신이 기특하고, 앞으론 평평한 숲 길을 즐기면서 하산할 일만 남았기에 마음이 편안하다. 짙고 얇은 초록색에 감싸여서 흙길을 걷다 보면 평일 내내 어깨를 짓누르던 근육결림과 편두통이 사라진다. 온몸에 피가 돌면서 깨끗한 산 공기가 세포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다음 한 주를 버텨낼 수 있는 체력과 에너지도 같이 채워진.


이번 주말에도 용마산 데크길 산책을 가야겠다. 회사 일과 육아에 지쳐서 몸도 마음도 텅 비어버렸으니, 초록초록한 나무에 둘러싸여서 맑고 깨끗한 에너지를 듬뿍 채워와야겠다.


용마산 데크길 전경


2. 중랑천 강변 산책


자궁의 양수에서 자라난 인간은 생애 초기부터 이미 대양감(Ocenic feeling)을 경험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물에 친근하고 끌리는 이유는 인간이 물에서부터 기원하여 물 밖으로 나와 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 69-73)


용마산 등산 갈 체력이 안될 땐 중랑천 강변길로 간다. 꽤 넓은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중랑구와 동대문구가 마주 보고 있기에, 나는 중랑구 길을 따라서 다리 건너 동대문구 길로 돌아오는 코스를 애용한다. 같은 강이지만 관할 구청이 달라서인지 산책로 주변 꾸밈이 조금씩 다르다. 덕분에 다양한 전경을 눈에 담으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물을 향한다. 고 넓은 강물은 날씨에 따른 주변 환경을 그대로 반사한다. 구름 없이 화창한 날이면 양쪽 아파트를 넘어서 멀리 잠실 롯데타워까지 강물에 비친다. 뭉게구름이 뜬 날엔 하늘과 강물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똑같은 하늘색과 하얀색 점박이 무늬를 만든다. 비 온 뒤 구름이 짙게 깔렸을 땐, 연회색의 차분한 색깔로 주변 사물을 투영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산책하는 사람은 많지만 결코 붐비진 않는다. 의정부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긴 강변길을 따라서 사람들은 위로 아래로 넓게 흩어진다. 시간대에 구애 없이 언제나 호젓한 산책이 가능하다.


중랑천 강변을 산책한 날에는 나 자신이 아주 여유로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졸졸 흐르는 강물 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따라서 어지럽던 머리가 시원해진다. 시끄럽던 속이 차분해지면서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정신없이 바쁜 날에도 한 템포 쉬어가며 중심을 지키도록 도와준다.


중랑천 강변 전경


3. 정 안되면 공원 산책이라도 꼭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 전에 출현했다. 지난 200년 동안 환경은 초록색에서 회색으로 급격하게 바뀌었지만 우리의 뇌는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뇌의 많은 부분이 구석기시대 푸르른 대평원을 달리던 수렵 채집민의 상태를 간직한다.
(p. 20)


가끔 너무 지쳐버려서 산도 강도 갈 수 없을 만큼 힘들 때가 있다. 어떻게든 가기만 한다면 머리가 맑아질 것임을 알면서도, 도저히 몸을 일으킬 엄두가 안 난다. 소파에 누워서 자꾸만 우울한 기분으로 파고든다.


그럴 땐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서 가까운 공원, 안되면 아파트 단지라도 걸어야 한다. 어떻게든 초록색 수풀을 보러 나간다. 옷 입고 현관문을 나가는 게 어렵지, 막상 나가면 무조건 좋다는 걸 안다.


바깥공기는 다양한 냄새를 품고 있다. 쨍한 햇볕 냄새 혹은 대기를 떠다니는 비 냄새, 햇볕과 수분을 머금은 풀내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 모든 공기를 몸 안으로 가져온다. 신선한 바깥공기로 내 안을 가득 채운다. 곧바로 기분이 좋아진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다. 나무와 풀을 보면서 최근 계절을 깨닫는다. 뉴스와 달력으로 보고 들어서 이미 알고 있건만, 막상 눈과 코로 마주치고 나서야 '계절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세월을 체감한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마음이 훨씬 너그러워진다. 산책 중 마주치는 강아지, 새, 고양이와 눈 맞추고 웃어줄 만큼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어느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뿌듯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간다.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했으니, 내일도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 한 주도 무사히 잘 지나갈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자주 가는 공원과 아파트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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