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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Apr 04. 2024

여자를 차별하는 고양이


결혼을 했더니 고양이가 생겼다. 남편이 총각 시절부터 키웠던 떼껄룩 여자 고양이. 이름은 야옹이. 도둑고양이라서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대략 8살이라고 한다. 검은색, 갈색, 주황색이 뒤섞인 강아지급 덩치의 거묘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했다. 신혼집 이사 첫날, 고양이 케이지에 한참을 숨어있더니 내가 잠시 화장실을  사이에 부리나케 작은방 캣타워로 도망쳐버렸다. 숨숨집에 웅크린 채 내가 살짝만 다가가도 하악거렸다. 33살 평생 고양이 키울 날만 기다리던 나는 마음 깊이 상처받았다.



고양이 장난감과 츄르도 소용없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방에만 꼭꼭 숨어있었다. 출근해서 안 보일 때에나 밥 먹고 물먹고 화장실 갔다 오느라 바빴다. 남편은 성묘라서 시간이 필요하댔고, 시어머니는 야옹이가 암컷이라서 같은 여자를 싫어한다고 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물이 날 싫어한다는 충격과 함께 나의 신혼생활은 시작됐다.



나는 야옹이랑 친해지고 싶었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골골 소리도 듣고 싶었고, 무릎 위로 올라온 고양이의 따뜻함과 묵직함도 느끼고 싶었다. 서로 익숙해지면 나아질까 싶어서 매일 캣타워 앞에 자리 잡고 내 모습을 보여줬다. 인터넷에서 배운 대로 손등을 내밀어 냄새도 맡게 해 줬다. 하지만 돌아온 건 하악질과 냥냥펀치뿐이었다. 발톱에 긁혀서 피도 봤다. 나도 점점 지쳤다. 주인을 몰라보는 야옹이에게 화가 났다.


서운한 마음에 나도 야옹이를 무시했다. 독서와 핸드폰 게임 취미 활동 장소도 거실의 푹신한 소파로 옮겼다. 굳이 찾아가서 인사도 안 하고, 가끔 남편 대신 밥이랑 물만 갈아주면서 아는 체 했다. (내가 밥을 줬다는 생색은 내야겠기에.) 그렇게 같은 집 & 같은 남자를 공유하는 여자 사람과 고양이의 독립생활이 이어졌다.



사람과 고양이가 내외하던 어느 날,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데 야옹이가 거실로 나왔다. 벽을 따라 살금살금 걸으며 잔뜩 경계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소파를 멀찍이 돌아서 창문 앞에 새로 마련한 캣타워로 올라가더니, 가장 높은 층에 배를 깔고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참을 주시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인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무심한 척 야옹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안 보이니, 야옹이 역시 경계태세를 풀고 창 밖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졸기 시작했다. 소파를 스치는 내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다시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하긴 했지만, 캣타워를 내려와 작은방으로 도망가진 않았다.


나는 야옹이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핸드폰을 바라봤지만, 혹여 야옹이가 놀라서 도망갈까 봐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심한 표정과 달리 속으로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야옹이가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준 걸까? 같은 공간을 공유할 만큼 내가 편해진 걸까? 드디어 나도 집사로 인정받은 건가? 감격한 사람과 무심한 고양이가 함께하는 장면이 드디어 우리 집에도 연출됐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하는 생활도 어느새 1년을 맞이했다. 사계절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야옹이는 여전히 날 안 좋아한다. 나와 같은 햇살을 받으면서 거실을 공유하고, 내가 주는 밥과 물을 받아먹고, 내가 치워준 화장실에서 볼일도 해결하지만 딱 그 정도의 사이일 뿐, 날 향한 애정 어린 눈빛이나 야옹 소리를 표현해주진 않는다. 적당한 거리와 예의를 지켜야만 유지되는 회사 동료 내지 하우스 메이트 정도랄까? 사랑하는 한 남자를 공유하는 관계이니, 이 정도면 제법 친한 사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적당한 무심함과 거리를 찾고 나서야 나와 야옹이의 관계는 안정됐다. 함부로 쓰다듬겠다며 손을 뻗는 일방적인 애정 표현을 거두었더니, 야옹이 역시 나를 향한 하악거림을 멈추고 부드러운 눈 맞춤을 허락했다. 서로의 영역과 시간을 존중하는 것. 비로소 우리 집의 모든 생물이 평화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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