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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피알 Oct 11. 2022

3. 파티룸이 아니고 싶은 파티룸의
아이러니

88학번의 공간 대여 N잡러 도전기

[N잡러는 여러 수를 의미하는 N에 직업을 뜻하는 Job과 사람을 일컫는 ~er을 붙인 합성어로 한명이 여러 개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MZ 세대들은 N잡러를 꿈꾼다.  N잡러 생활이 안정되면 회사는 때려치우는 것이 목표다. 그런 그들에게 공간 대여가 각광받고 있다. 적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일정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30분 일하고 월 300은 번다더라…”류의 얘기들이 많다. (이건 누가 코인 해서 떼돈 벌었다 와 같은 얘기다. 돈을 번 사람이 있겠지만,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정작 N잡러가 되어야 하는 것은 MZ 세대보다도 본업을 그만둘(자의든 타의든) 시간이 멀지 않은 4050이 아닐까? 88꿈나무로 대학에 들어가 땔나무라는 소리를 듣다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된 2022년에 어쩌다 공간 대여를 부업으로 시작한 이야기]




내가 쇼핑할 때 잘 쓰는 이상한 말(?)이 있다.  “티셔츠 같지 않은 티셔츠를 살 거야”,  “정장 같지 않은 정장이 필요해” 이상한데 어떤 말인지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ㅎㅎ  같은 맥락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의 컨셉은 ‘파티룸 같지 않은 파티룸’이라고 정의했다.  


파티룸 같지 않은 파티룸을 만들자


‘내가 쓰고 남는 시간에 빌려줘서 월세를 벌자’가 이 공간이 가진 목적성이니 너무 파티룸스러운 공간으로 만드는 건 안된다.  파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공간에서 내가 많은 시간을 편하게 머물 수는 없다.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부동산에 어떤 매물을 구하고 싶은지 설명하는 것부터 어렵다.  “뭐 하실 거예요?”라는 질문에 “음, 그러니까 공간을 빌려주는 건데, 모임을 할 수도 있고, 회의를 하거나, 원데이클래스를 열고, 프라이빗하게 영화를 본다든지….아 스튜디오로 쓸 수도 있고요”라고 설명하면 대체로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래서 그게 뭔데요?” 다른 하나는 “아 파티룸이요?”


이런 어려움은 인테리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다 보니 페인트, 전기 등 각 단계별로 업체를 직접 선정해야 했는데, 이때도 어떤 용도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런 건 뭐 좀 더 설명하면 해결될 일이었으나, 더 큰 문제는 브랜딩이었다.  공간의 네이밍과 이를 설명하는 한 문장의 슬로건만으로 ‘파티룸 같지 않은 파티룸’이라는 컨셉을 전달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이럴 때 제일 좋은 건 역시 염탐하고 훔쳐 오는 거다. 티 안 나게^^ (진짜 훔치자는 건 물론 아니다.  아이디어 훔치는 법을 주제로 훔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accidentallypr/1 ) 공간 대여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에 들어가서 파티룸을 검색하고 (파티룸 안 한다면서 이럴 땐 또 파티룸이다 ㅋㅋ) 베스트 공간순으로 정렬해서 탐색을 해본다.  일단 ‘OOO 파티룸’, ‘OOO 스튜디오’처럼 공간의 쓰임새를 특정 짓는 네이밍은 제외.  혹시 잘되면 2호점, 3호점을 낼지도 모르니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특정 지명을 네이밍에 넣는 것도 제외.  물론 특정 지역에서 출발했다거나, 그곳의 감성을 담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지명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하려는 곳은 그러기에는 좀…. 약하다.  솔직히.  


대학가에 가면 ‘친구 자취방’을 모티브로 했다는 파티룸이 생각보다 많다.  편안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전해져서 좋다.  그런데 혹자는 말한다. “그럼 친구 자취방을 가지 뭐 하러 돈 내고 공간을 빌려?” 백번 맞는 말이다.  나만의 아지트 같은 편안함을 담지만 또 돈 내고 빌리기에도 아깝지 않은 느낌을 주는 건 쉽지 않다.  원래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건 없다.  내가 필요한 토끼 한 마리를 먼저 잡고, 한 마리 더 잡을 수 있으면 좋은거지. 


일을 풀어가다 고민이 생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초심으로 자꾸 돌아가는 거다.


나는 경쟁 비딩 제안서를 쓸 때도 잘 안 풀리면 클라이언트가 준 RFP (Reference For Proposal) 첫 장을 다시 꺼내 읽는다.  대체로 그 안에 답, 혹은 답을 찾아가는 길 안내가 분명히 있다.  




나만의 공간인데, 누구를 초대해도 손색이 없을 공간! 그거였다. 방점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요즘 집들은 대체로 방, 거실, 부엌,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예전 집에는 또 다른 공간이 하나 있었다.  ‘응접실’이다. 요즘 거실 혹은 리빙룸의 역할을 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응접실 應接室 [응ː접씰]  손님을 맞아들여 접대하기 위하여 꾸며 놓은 방


이라고 설명되어있었다.  유의어는 객실, 로비, 살롱 (솔직히 이런게 유의어일줄은 몰랐다)


‘응접실’ 마음에 든다.  일단 내가 담고 싶은 컨셉을 어느 정도는 전해줄 수 있겠다 싶었고, 기억하기도 쉽고.  하지만 어떤 네이밍을 상업적으로 쓰고 싶을 때는 꼭 거쳐야 되는 몇 단계가 있다.  


상표등록이 가능할지 살펴야 한다.  상표등록이 가능하다는 건 나만의 상호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거고, 동종 업계에서 동일한 상호명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최소한 상표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상표 검색은 키프리스에서 하면 된다. (www.kipris.or.kr) 다행히 없다. 


그다음은 네이버에 검색 키워드로 넣어보는 거다.  이 키워드로 상위 노출이 불가능하겠다고 판단이 서거나, 노이즈가 너무 많다면 포기해야 한다.  온라인 비즈니스에서 (공간 대여는 오프라인에서 하지만 사실 이건 99% 온라인 비즈니스가 맞다) 네이버는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네이버라는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SOV(Share Of Voice)를 차지할 수 없다면 너무 힘들어진다.  의외다.  너무 일반 명사여서 많이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응접실’로 네이버 상위 노출을 가는 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소비자들은 아마도 ‘미사응접실’이나 ‘하남응접실’로 검색을 할거고, 이건 훨씬 더 쉽다.  


물론 “돈 주고 응접실을 왜 빌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방 보다 좋은 호텔방에 호캉스를 가는 것처럼 우리 집 거실과는 색다른 공간으로 설명하면 어려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좀 아쉽다면, 영문 표기가 애매하고, 스펠링이 너무 길다. 그리고 실제 사용하면서 발견한 건데 ‘응급실’로 쓰는 분들이 있다 ㅎㅎㅎㅎ 힐링이 간절할 때 응급실처럼 찾아주는 공간이어도 좋기는 하다. 꿈보다 해몽.





로고는 크몽에서 쉽게 만들었다.  비즈니스 시작하기 좋은 세상이다.



공간에 대한 짧은 설명은 ‘뭘 해도 되는 파티룸 렌탈 플레이스’로 정했다.  저스트두일님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공간에 대해 정의하려고 하지 마라.  그 공간의 쓰임새는 호스트가 아니라 이용하는 고객들이 정하는 거다”였다.  그렇다. 정의하지 말자. 이 공간에서 뭘 하면 어떤가? 불법만 아니라면 말이다. 


뭘해도 되는 렌탈플레이스, 응접실


이렇게 탄생(좀 거창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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