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caa Apr 15. 2022

다산의 공감 연습2(맹자5)

5장 맹모삼천지교의 거짓/후상유전상後喪踰前喪

 맹자라는 이름을 들으면 성선설性善說, 측은지심惻隱之心, 호연지기浩然之氣 등 철학적인 개념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성어가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날 것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맹모삼천지교의 교육환경에 대한 논의가 예전의 8학군을 비롯한 공간적 환경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2022년에 정권이 바뀌면서 여성가족부와 함께 교육부에 대한 존속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어린 자녀들의 교육적 환경을 중요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스쿨존school zone을 지정하여 학교 주변을 구별하는 것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하고, 학교 주변에 유해시설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주변 장소에 대한 성역화聖域化 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에 ‘맹모삼천지교’ 즉, 맹자의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정약용은 맹모삼천지교 고사가 거짓이라고 지적한다.

 <양혜왕> 하편 16장에서는 노평공魯平公과 관련된 이야기가 소개된다. <양혜왕> 편에 등장하는 양혜왕, 제선왕, 등문공滕文公 등 다른 군주들은 맹자와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평공은 맹자와 대면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는데, 중간에 장창臧倉이라는 신하가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16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노평공이 외출하려 하는데 시신侍臣인 장창이란 자가 말하기를 “먼저는 주군께서 외출하실 때 반드시 유사에게 어디로 가신다고 일러 놓으시더니 오늘은 가마도 벌써 준비가 다 되었는데 유사가 아직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실는지?”
魯平公將出, 嬖人臧倉者請曰, “他日君出, 則必命有司所之. 今乘輿已駕矣, 有司未知所之, 敢請.” 公曰: “將見孟子.”
《한글 맹자》<양혜왕> 하편 16장     


 《맹자》는 처음 시작은 “맹자견양혜왕孟子見梁惠王”이라 하여 맹자가 양혜왕을 보러 간 것으로 시작했는데, <양혜왕> 하편 마지막 장에서는 노평공이 “장견맹자將見孟子” 즉, 맹자를 보러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노평공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장창이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았고, 노평공은 맹자를 보러 가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맹자를 만나러 간다는 대답을 듣고 장창은 만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웬일이십니까? 주군께서 경솔하게 몸을 움직여 한갖 하찮은 사내를 먼저 찾아보려 하시니 그를 현인으로 생각하시는지? 예의는 현인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맹자는 나중에 치른 상례喪禮가 먼저 치른 상례보다 나았다 합니다. 주군은 그를 만나실 것이 없습니다.
何哉? 君所爲輕身以先於匹夫者. 以爲賢乎? 禮義由賢者出, 而孟子之後喪踰前喪. 君無見焉!     


 장창은 맹자를 필부匹夫 즉, ‘하찮은 사내’라고 부르며 맹자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치른 상례喪禮가 먼저 치른 상례와 달랐기 때문이다. 먼저 치른 상례는 아버지상을 말하고, 나중에 치른 상례는 어머니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오래 전에 아버지상을 치를 예법과 최근 어머니상을 치렀을 때의 예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맹자가 예의를 모르는 사람, 다시 말해 현인이 아니라고 비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평공이 통치하는 노魯나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노나라는 주周나라 초기 매우 중요한 제후국諸侯國이었다. 문왕文王의 아들 무왕武王이 상商 또는 은殷나라를 멸망시키자 주나라가 천자국天子國이 되었다. 주나라는 봉건제도를 통해 제후들에게 땅을 주고 나라를 세우게 했는데, 노나라는 문왕의 아들 주공에게 봉한 나라이다. 그리고 주공은 주나라의 예법을 다룬 《주례周禮》라는 책을 썼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예의에 관한 전문가였다.

 공자가 활동한 춘추 말기는 주나라 왕실의 힘이 약해지고, 제후들의 힘을 과시하던 시기인데, 노나라는 힘은 없어도 주나라의 예법에 관한 전통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에서 공자를 비롯한 유자儒子들은 예의에 관한 전문가로 대우를 받고 있었고, 공자는 유자들의 사상을 발전시켜 유가儒家라는 학파를 형성하였다.

 맹자는 공자와 증자 그리고 자사의 뒤를 잇는 정통성을 가진 유학자인데, 지금 장창이란 자가 맹자가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니, 사실 이것은 장창의 근거없는 가짜뉴스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유학자는 기본적으로 예의에 관한 전문가들이다. 예의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문헌을 남긴 학파가 유가儒家이고, 또한 그들이 가장 필요했던 분야가 바로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다시 말해, 장례葬禮과 제사祭祀였다. 

 17세기 조선시대의 가장 큰 논쟁은 예송禮訟논쟁이었다. 효종의 승하했을 때, 효종을 일반 사대부와 동일하게 소현세자의 동생으로 보아 차남의 장례식을 치를 것인지 아니면, 사대부와 다르게 왕으로서 장남의 장례식을 치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유학자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예의와 관련하여 전문가임을 자처했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예의에 대한 전문가 중에서도 공자에 버금가는 선구자가 맹자인데, 맹자가 장례 또는 상례에 대해서 결례缺禮 혹은 실례失禮를 범했을 리가 없다. 장창의 악의적인 왜곡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다산의 공감 연습2(맹자-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