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국
2023년 8월 16일. 그제 회사에서 송별회를 하고, 어제 짐을 싸고 오늘 독일에 도착했다. 편도 비행기를 끊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 언제 돌아올지 그 누구도 모른 채 부모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날씨를 가장 기대했다. 무더운 날, 양복 입고 출근하는 날을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유럽의 건조한 바람과 선선한 날씨가 나를 입국장에서 반기겠지, 하며 짐을 찾아 이국땅으로 향했다.
날씨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당황했던 감정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햇빛은 뜨거웠고, 습도도 넉넉했다. 그전 해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가벼운 바람은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양손의 캐리어는 회사 가방만큼 무거웠고 무더웠다.
어렵게 찾은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배가 매우 고팠기에 호텔 앞 케밥 집에 갔다. 훗날 그 케밥이 베를린에서 탄생해서, 독일 전 국민의 김밥천국인 되너케밥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 내 입 맛에는 맞지 않았다.
긴 비행에도 불구하고, 저녁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아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에어컨도 없는 더운 날씨는 더욱 잠을 쫓아냈다. 바깥은 파티가 벌어지는 듯했다. 내일 아침 일찍 베를린으로 가야 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내 환경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소망과 현실은 한국과 독일만큼이나 멀었다.
나는 벌써 집이 그립기 시작했다.
일어나기는 새벽에 일어났다. 아침 9시 30분 기차여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전에 프랑크푸르트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 도시로 유명하다. 도이치뱅크와 유럽중앙은행의 본사가이 이 도시에 있다. 나는 휘황찬란한 고층 빌딩이 즐비하겠지, 기대했었다. 허허벌판에 몇 개 덜렁 서있는 빌딩은 오히려 외로워 보였다.
세상 밖은 넓고 높아 보이는 뻔한 착각을 나는 했었다.
아침으로 도넛을 먹고 캐리어를 챙겨 방을 나왔다. 역까지 2.5 km여서 버스를 탈 법했으나, 표를 어떻게 사는지 몰라 그냥 걷기로 결심했다. 평소에 6km를 매일 뛰던 나였기에 2.5km는 나에게 거뜬해 보였다.
역에 도착했을 때 캐리어의 바퀴는 거의 나갔었다. 역 내 모든 에스켈레이터에는 나뭇잎이 수북했다. 이미 땀에 절은 몸을 이끌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한국에선 이런 나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다.
기차가 도착하고 나는 내 좌석을 확인했다. 어느 노인 분이 이미 앉아 있었다. 나는 좌석표를 보여주며 내 자리라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여긴 정해진 좌석이 없다고 아무 데나 앉으라 했다. 나는, 나에겐 두 개의 짐이 있고 다른 좌석은 공간이 넉넉지 않아 내가 미리 여기를 예약했다, 실례지만 비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분은 자리를 비켜줬다.
베를린까지는 4시간이 걸려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미리 친해진 Fredi라는 친구집에서 일주일 간 머물 계획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으로 가기 위해 구글맵을 켜고 역사를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어느 젊은 여성이 나를 반겼다.
"안녕"
"미안, 나 독일어를 못해"
영어는 존댓말이 없으니 이러한 말투로 통일하겠다.
"아, 미안. 내 이름은 xx라고 해"
지금은 이름을 까먹은 이 친구는 자선단체에서 나왔다. 나에게 어디서 왔냐, 베를린에 왜 왔냐, 여러 질문을 친근함과 함께 던졌다. 으레 그렇듯, 그 끝은 기부금을 제안했다.
"너의 독일 계좌를 여기에 적어주면 월마다 10유로씩 기부가 돼. 어때. 해줄 의향이 있니?"
"미안, 나 한국에서 어제 와서 독일 계좌가 없어"
그녀의 실망한 눈치를 나는 금세 알아챘다. 그래도 웃으면서 헤어졌다.
나는 다시 내 친구의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곳이 내가 앞으로 2년간 공부할 베를린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함부르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