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야 May 15. 2024

하나니

나는 내 이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불러주는 발음도, 스스로 머금어보는 발음도 쉽게 정이 가지 않는다. 성씨도 특이한 편이라서 별명이 대부분 지역명이나 음식명이었기에 더욱 싫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일본인 친구가 "너는 이름 부를 때 발음이 귀여워서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외국인에게는 귀여운 발음으로 들리나, 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자니 처음 나의 이름을 짓고 부르며 두근거렸을 이들의 미소와 그 이름으로 불려 온 일련의 기억들 때문에 이내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별명은 외할머니께서 불러주시는 ‘지야’라는 명칭이었다. “지야, 우리 똥강아지 물 좀 떠 와라.” “우리 지야 언제 커서 할머니 고기 사주려나?” 할머니가 ‘지야’라고 불러주는 순간은 대부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내가 할머니에게 지어 준 별명도 있다. 말보다 노래로 언어를 먼저 익힌 나는, 음표를 붙이듯이 말미에 ‘하나니’를 붙이면서 할머니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너무 아가였을 때라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은 단어이지만, ‘네가 그랬단다.’라며 주입된 추억에 의해 할머니는 언제나 ‘하나니’가 됐다.

할머니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할머니는 아기씨라고 불릴 만큼 양갓집 종손이었다는데, 내게는 언제나 아기씨가 아니라 장군님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본인의 건강은 본인이 챙기시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만큼 남아선호사상이 강하셔서 언제나 동생을 먼저 챙겨주셨지만, 할머니가 동생 앞으로 밀어주던 잡채는 가장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가 되었고, 나도 예뻐해 달라며 할머니에게 애교를 피우는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할머니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의 변화가 비치는 순간이 무서웠다. 안부 전화를 거는 엄마의 통화 횟수가 잦아지고, 달래듯이 유연해지는 엄마의 목소리가 늘어갈수록 할머니의 늙음이 실감 났다. 어릴 때 들려주시던 바보 삼 형제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며 할머니께 부탁했을 때도 계집애가 내가 보고 싶었나 보더라며 알려주셨는데, 그 말이 그렇게 슬펐다. 보고 싶다고 생각해도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분이셨는데.

옛날에 바보 삼 형제가 대청마루에 앉아 달을 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말했습니다. *”다이도이바이다이다.”

셋째가 말했습니다. **“두이다이바이보이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바보 삼 형제 이야기는 언제나 할머니의 바보 연기가 일품이었다. 그런데 다시 들려주신 이야기에는 둘째가 한 말이 빠져 있었다. 둘째가 생각이 안 난다며, 이제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졌나 보다고 속상해하시면서 둘째는 내게 기억해 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둘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나니, 둘째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저는 하나니처럼 바보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달이 밝다

**둘 다 바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분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