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과언니 Mar 02. 2022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침 출근길, 문득 안부가 궁금해진 너에 대해

어느 날, 아니 가끔, 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일 년 중 한 3일 정도?

예고 없이 떠오르는, 시쳇말로 갑툭튀 생각 때문에 출근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때가 있다. 

추운 아침 바람에 외투 깃을 고쳐 잡으며 전철역 입구에 들어서던 바로 그때, 


'아.. 나도 참 뜬금없네.'

라는 생각과 함께, 아니 동시에,

생면부지 보이저 1호의 안부가 굉장히 궁금해졌다.


'지금쯤 보이저 1호는 어디에 있을까?'


출근하는 인파로 북적이는 전철역 입구로 바삐 몸을 밀어 넣으며, 평소와 같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시작하고 있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오늘과 같이 내일도 이렇게 시작할 것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알고 있기에 아침 출근시간에는 출근 자동 모드가 설정된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재생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대책 없이, 뜬금없게도 보이저 1호의 안부가 너무나 궁금해 애달파졌다.


'명왕성을 지난 지 꽤 되었으니, 지금쯤은 아마도 그저 깜깜하고 텅 비어있는 차가운 공간에 있겠지. 허공을 슝 하고 날아가고 있겠지. 아.. 혼자 외롭겠다.'


보이저호는 1호와 2호가 있지만, 유독 1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보이저 1호는 1호이지만, 실제 출발은 보이저 2호보다는 늦었다. 두 탐사선 모두 딱딱한 지표가 없는, 기체로 이루어진 목성형 행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쏘아 올려졌는데, 2호보다 빠른 경로로 목성에 먼저 도달하게 하기 위해 시간차를 두고 1호가 뒤에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보이저 1호는 2호를 앞지르게 되었다. 이름처럼 보이저 1호는 현재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인류가 만든 물체가 되었다. 

1호와 2호 모두 서로 다른 경로에서 목성과 토성과 토성을 촬영하였으나, 1호는 토성을 지나 명왕성 바깥의 카이퍼 벨트로 바로 향하였다. 우리가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목성의 다양한 위성과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관련된 사진은 사실 전부 보이저 2호가 보내준 것들이다. 목, 토, 천, 해...이렇게 행성 4종세트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고 알게 된 자세한 자료는 보이저 2호 덕분인 것이다. 이렇듯 보이저 2호가 탐사선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었다면, 보이저 1호는 20세기 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한껏 자만해진 인류에게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전해줌으로써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명왕성 근처를 지날 때쯤, 우리에게 '코스모스'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보이저 1호는 잠깐 고개를 돌려 지구를 바라보게 되었다. 태양빛 때문에 렌즈가 상할까 많은 염려가 있었는데, 이때 보이저 1호의 시선으로 촬영된 일명 '가족사진'으로 불리는 태양과 6개의 행성(금성, 지구,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의 사진은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  '창백한 푸른 점'으로 불리는 지구의 사진은 무한할 듯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사는 지구가 하나의 먼지와 같이 작게 보일 뿐이었다. 


현재 과학기술로는 보이저 1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찍을 수 없다. 다만 성간 공간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다고 추측할 뿐이다.

여전히 지구를 향해 안부를 보내오는 보이저 1호의 전파신호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평범한 파장이라고 한다. 


'너도 출근길의 나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이겠구나' 


보이저 2호와 속도가 비슷해서 가까운 거리에서 이동했다면 덜 외로웠을까?  어쩌면 홀로 선구적으로 우주를 향해 나아감에 뿌듯하고, 2호의 앞길을 열어주겠노라 다짐하며 평범하지만 보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바깥 영역은 먼지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층으로 오르트 구름 또는 오오트 구름으로 불린다. 언젠가 보이저 1호는 성간 공간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태양계의 마지막 코스, 오르트 구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약 3만 년간 항해한 후, 태양계를 벗어날 것이다.


보이저 1호의 지난 여정을 생각해본다. 보이저 2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매일, 매 순간의 묵묵한 항해 임무를 수행하며 가장 먼 곳을 경험하고 바라보고 있을 보이저 1호.

목적지를 향해 시커먼 터널을 질주하는 전철 안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보이저 1호를 느껴보았다. 익숙한 방향, 익숙한 속도감, 익숙한 일상, 그리고 혼자인 듯 아닌 듯 외로움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살아가는 나이지만, 인생이라는 주어진 광활한 우주를 성실히 날다 보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했던 멋진 우주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대책 없는 자신감이 불쑥 솟는다. 


'보이저 1호야. 오늘 하루도 우리 서로 잘 날아보자'

작가의 이전글 앗, 그러시면 저는 상처받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