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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과언니 Mar 23. 2022

공룡밥나무가 있는 길이라면 오케이

색연필로 칠한 듯한 풍경을 만들어 주거든요

내가 그 나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 OT에 참석을 했을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얼굴을 익힌 친구도 없고, 떡국을 먹고 스무 살 성인은 되었다지만 낯선 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OT에 참석하라는 연락에 일단 학교 강당에 착실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환영사니 학교생활 안내니 일련의 식순에 의거한 공식적인 행사를 착실하게 참석하고 있었다. 하품이 나올 무렵 학교 측이 준비한 행사는 끝나고, 각 단과대학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무리에 휩쓸려 입학할 학부가 있는 건물로 갔고, 거기에서 다시 반배정을 받듯이 우리를 안내할 선배를 소개받고 해당 교내 투어(?) 그룹에 무사히 잘 끼워 넣어졌다.

학교는 넓고, 아직 잎이 돋지 않은 계절은 추웠다. 고등학교면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추위도 좀 잊혔겠지만, 서로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들과 하나의 모둠이 되어 오늘 처음 보는 누군가를 따라 학교를 돌아본다고 하니 왠지 더 추웠던 것 같다. 


교정은 생각보다 넓었고, 같이 이동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걷는 것도 좀 늘어지고 이동하는 것이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이 건물 저 건물 기웃거리며 둘러보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강의실, 강당, 어학랩, 학생식당, 동아리방 등 건물 안의 구성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푸른 계절이 되면 굉장히 예쁘게 변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넓은 캠퍼스의 야외 공간에 눈길이 갔다. 잘 정돈된 조경을 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봤던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하이틴 드라마가 떠오르며 어느새 추위는 온데간데없었다. 

한 시간 여 가까지 돌면서 제법 옆사람과도 가볍게 말을 섞고, 선배를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제법 시끌시끌해졌다.

마지막 코스로 운동장 주변의 산책길로 들어섰는데, 안내를 하던 선배가 질문을 던졌다.

"너희, 혹시 이 나무 이름 아는 사람?" 

"......" 

질문은 역시 모두를 조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학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지만, 질문이 끝나기도 무섭게 일동 조용해졌다.

입시에 예민하게 굴었던 고3 심리가 아직 남아있었는지, 다들 그냥 '몰라요'하면 될 것을 그저 조용하게 입 다물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길 기대하면 물었던 질문이었는데 말이다.


"다행이네, 사실 나도 이 나무 이름은 몰라. 전공이 이쪽과는 멀어서. 대신, 별명은 알고 있어."

"별명이요?"

"응. 별명이 있어. 나도 선배들한테 전해 들은 거라 어쩌면 우리 과에서만 부르는 별명일 수도 있고"

"......"

"이건 공룡밥나무야"


세상에. 공룡밥이라니. 나는 그 별명이 너무 멋지고 근사하게 들렸다. 이어지는 설명이 있었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생물이 진화하면서 오늘날 우리 인간이 등장하게 된 거잖아?  이 나무는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 공룡시대 때부터 지구에 살았던 나무야. 초식공룡들의 먹이였을 거야. 그래서 공룡밥나무라는 별명인 거지"


OT가 있고 난 1년 뒤, 식물 관련 수업을 수강했고, 그 수업에서 그 나무의 이름이 메타세쿼이아라는 멋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알게 된 후 지금까지 쭉 메타세쿼이아는 내 맘 속 애정 나무가 되었다. 하늘로 쭉 뻗은 곧음 새는 대나무도 저리 가라 할 만하고, 겉씨식물이면서 소나무나 잣나무 잎에 비교하면 깃털 같았다. 무엇보다 봄에 새싹이 돋을 때나 가을에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모양새가 색연필로 채색한 듯 부드럽고 곱디곱다. 언젠가부터 지자체에서 '00 메타세쿼이아 길' 이런 식으로 제법 긴 나무 이름을 이용하여 관광지를 홍보하기도 하고 있다.


메타세쿼이아가 가로수로 심겨 있는 길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만약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가로수길을 걷게 된다면 살짝 아는 체를 해보길 권해본다.

"이 나무 별명이 뭐게? 바로 공룡밥나무야"

만약 일행이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도 알고 별명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잎을 하나 따서 이렇게 질문해 보길 권해본다.

"자 잎을 봐, 이건 메타세쿼이아일까? 낙우송일까? 사람들은 이 둘을 잘 구별 못하거든"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아는 체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긴급처방으로 팁을 하나 공개할 수 있다.

잎의 가지를 중심으로 바늘잎이 좌우대칭으로 마주나 있고 또 잔가지 또한 대칭으로 마주나 있으면 메타세쿼이아, 서로 어긋나 있으면 낙우송이다. 메타에 'ㅁ'과 마주나기의 'ㅁ'을 연결하여 외우시길. 

예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다가 애교로 할 수 있는 아는 척 꿀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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