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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Jun 30. 2024

달라의 교환일기-두 번째 편지 1

자주 비판이란 포장으로 나의 질투를 드러내요.

달리에게 


서울은 며칠 무척 덥다가 한차례 비가 왔어요. 남원은 어떤지요? 

<달라의 교환일기> 첫 번째 글을 쓴 후 저는 예전 제가 쓴 글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가입한  글쓰기 플랫폼에 올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제 글에 반응하는 횟수를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해요. 물론 핸드폰 알람이 뜨니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전 은근한 관심종자랍니다! 


첫 번째 편지 이후 잠깐의 통화에서 저는 이번 편지에는 ‘글쓰기’에 대해 쓰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라니, 참 엄청난 글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 글쓰기를 떠올리면 예민하고 세련된 외모의 젊은 여성이 떠오릅니다. 매우,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고 편견이긴 합니다. 아마 저의 이런 편견은 제가 팔로우하는 sns의 젊은 여성작가들, 혹은 젊은 페미니스트들 영향일 거예요. 몇 년 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부르던 시기에 sns를 열면 젊은 여성들의 글이 넘쳐났어요. 마침 저도 저의 여성됨을 많이 고민하던 시기였고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에 한참 열을 올리던 때였어요. 


제가 <달라의 교환일기>를 소개할 때 늙어가는 여자(소라)와 아직 젊은 여자(달리)라고 하자 달리가 그건 저의 기준이라고, 사회적 기준에선 달리 역시 중년이라고 했어요. 달리도 중년이라고 하니 좋았어요. 참, 저도 별게 다 좋아요, 그죠? ^^ 

전 후지게도 나이로 사람을, 여성을 가르고 나눠보는 습관이 있어요. 전 저의 그 습관이 질투에서 출발하는 거 같아요. 그 질투를 가만 들여다보면 젊음이 주는 가능성과 기회에 대한 질투이기도 하고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젊은 여성이 내뿜는 매력에 대한 질투이기도 해요. 그것이 글쓰기와 결합하면 늘 언제나 젊은 여성의 글에 사람들은 더 관심과 열광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시 질투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내가 좋아하는 내 또래의 여성학자는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자원화해서 자신의 몸도 자원으로 활용한다는데 젊은 여성의 매력자원은 양날의 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저는 늘 입이 삐죽 내밀고 신자유주의에 편승하는 그 영리함을 비판하지요. 아니 더 솔직히는 비판을 빙자한 질투라는 게 더 정확해요. 

저는 자주 비판이란 포장으로 나의 질투를 드러내요. 그리고 더 자주 그 포장을 글로 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기형도 시인의 시처럼 ‘질투는 나의 힘’이네요. 실로 시인의 직관은 놀랍습니다. 

몇 해 전 공저로 책을 출간한 적이 있어요. 함께 책을 내신 분 중엔 60대 여성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섹스에 관련한 글을 출간하려는 분이었어요. 한 번은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낸 분들과 자리를 가졌어요. 그 자리엔 책을 이미 여러 권 출간한 분도 계시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도 계셨는데 60대 여성분이 섹스에 대한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데 출간을 해줄 출판사를 찾기 어렵다고 하면서 조언을 구했어요. 현실적인 조언들이 오갔는데 한 분이 불쑥 60대 여자의 섹스 이야기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물론 그 말 앞엔 돌봄과 늙음에 더 관심이 간다는 이야기를 먼저 했지만요. 다들 웃었지만 저도 같이 웃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덜컥거렸어요. 저 역시 섹스보단 돌봄과 늙음에 더 관심이 갔지만 60대 여자의 섹스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말은 왠지 폭력적으로 들렸어요. 

섹스에 관심 없는 20대도 있을 수 있고 섹스가 여전히 이슈인 60대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 출판사가 책을 내주건 말건, 세상이 궁금해 하건 말건 섹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탐구 중인 60대 동료 여성을 응원하지 못한 거 같아서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글쓰기를 떠올리면 젊은 여성을 떠올리는 저나 60대 여자의 섹스 이야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조언하던 그분이나 도긴개긴, 오십보백보, 그 밥에 그 나물이에요! ㅎㅎ


어떤 글이든 그 글이 목적은 결국 ‘나’란 생각이 듭니다. 보이고 싶든 보이고 싶지 않던 질투하는 마음도 고스란히 드러날 테고 세상이 궁금해 하건 말건 나의 욕망이 드러나는 글쓰기 말이에요. 우리가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지, 쓸 글에 제약을 가져서야 쓰겠어요? 


그래서 저는 더욱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안하고 질투하는 마음, 흔들리는 마음, 모호하고 불분명한 덜컹거리는 마음과 생각들이 글로 적힐 때 나는 비로소 내 감정들의 주체가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 젊은 여자든 늙은 여자든 글을 쓰는 여자들은 더 많아져야 해요. 가부장 남성중심 사회가 왜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알 거 같아요. 


질투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글이 어찌하다 보니 여기에 이르렀네요. 달리는 기억 할지 모르지만 제가 저의 질투하는 마음이 참 별로라고 한 적이 있는데 달리는 질투는 당연한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저의 못난 질투가 힘이 되더라고요. ^^ 


못나고 울퉁불퉁한 제 글을 읽어주어 고마워요. 


유월 마지막 날, 소라 드림 


*달라의 교환일기는 인구초과밀 지역에서 그림 그리는 여자(소라)와 인구소멸 지역에 살면서  글쓰는 여자(달리)가 서로의 일상과 생각들을 편지 형식으로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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