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말한다는 건 나를 사랑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요?
Dear. 소라
몇 년 전부터 여러 글쓰기 모임을 열었습니다. 글쓰기야말로 고독한 작업이고 저란 인간은 히키코모리 저리 가라 고독으로 점철된 인간인데, 왜 늘 누구랑 같이 쓰려고 할까.
우선 저는 불성실하고 게을러, 마감이 없으면 글을 제대로 쓰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투덜거리더라도 어느 정도의 강제가 필요하지요. 모임을 하면 마감이 공동의 약속이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쓰게 됩니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에서 본 글들은 (저를 포함해) 자신의 취약함 또는 연약함을 드러낼 때가 많았습니다. 부끄러움을 딛고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약함을 수용한 글은 실력이나 스킬을 떠나 그 자체로 빛나 보입니다. 질투를 고백한 소라의 글도 저에겐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가진 이미지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소라는 글쓰기, 하면 세련된 젊은 여자가 떠오른다고 했는데 저는 후줄근한 옷을 입은 여자가 세수도 안 하고 부엌 식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게 떠오르거든요.(바로 저입니다) 글을 쓰거나 손으로 뭘 만드는 ‘언니’들의 경험을 많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네요. 살림하다 보면 서재가 아니라 식탁이 내 작업장이 된다, 아이를 재워야 일할 수 있어 한밤이나 새벽에 글을 쓴다, 그런 이야기들이요.
그래서 옛날에 어떤 유명 남성작가가 자기 집에 만든 감옥에 들어앉아 글을 쓴다는 기사를 보고 실소가 나왔습니다. ‘당신이 글 쓸 동안 거기 사식은 누가 넣어준대?’ 기사를 연재하거나 책을 집필할 때 저는 하루 8~10시간 정도 앉아 글을 쓰곤 합니다. 그때 제일 귀찮은 게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에요. 뭘 먹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부터- 먹고 치우는 동안 일의 흐름이 깨지는 게 번거롭고 비효율적이거든요. 감옥에 갇힌 사람이 이렇게 부럽긴 처음이네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질투는 외모나 능력보다 주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왜 나는 A보다 덜 사랑받지?’ ‘쟤는 내가 받을 사랑을 빼앗았어’ 너무 치사하고 바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말로 뱉을 수 없는 이런 마음들이요. 어린이였을 땐 성차별적인 할머니가 ‘고추’ 달린 손자들만 사람 취급을 해서,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엔 같이 놀던 여자친구 무리에서 나만 사이가 소원해져서… 상처받고 속상해하곤 했는데요. 사실 질투 안에는 분노, 슬픔, 서운함, 두려움, 억울함 등등의 여러 감정이 범벅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질투 너머의 진짜 숨은 마음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왜 좌절했는지 알고, 그것과 잘 만나기 위해.
저는 여자들끼리의 연애가 대유행하던 여중을 다녔습니다. 동급생 중에 학교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여학생 Top3가 있었는데, 복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마치 아이돌처럼 후배들이 소리를 지르고 쪽지를 던졌어요.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저도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2학년 때 부반장을 엄청 짝사랑했어요. 그 아이는 전교 Top3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기가 많아 걔한테 잘 보이려는 추종자들이 주변에 늘 득실거렸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부반장에게 말을 걸려고 해도 옆에서 견제하는 애들 때문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죠.
그래도 마음이 통했는지 아니면 그 애도 나에게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부반장과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남몰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편지를 좋아하는군요!) 저는 그 애가 가수 이승환을 좋아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일요일에는 꼭 교회에 가고, 영화 포스터 모으기가 취미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애와 손잡고 단둘이 시간 보내는 상상을 많이 했지만, 막상 만났을 땐 쑥스럽고 어색해 별로 친근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애는 저에게 전화나 편지에서만 다정하다고, 좀 서운해하기도 했는데요.(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츤데레 재질…)
어느 날 학교에 오니 추종자 중 하나인 A가 부반장이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극장에서 뜯어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선물 받은 부반장은 뛸 듯이 기뻐하며 A를 포옹했고, 그날 A는 종일 부반장의 옆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부반장의 관심을 고파하던 다른 친구들은 낙담하고, 저는 포스터 한 장에 오락가락하는 부반장의 태도에 화가 났어요. 자기 딴에는 모든 친구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겠다고, 매일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그 애의 관계 방식(솔직히 어장관리 아닌가요?)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비참하여 차마 말할 순 없었지만, 제발 “나만 좋아했으면 좋겠다!” 저의 질투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우리가 쌍방향으로 같은 무게의 감정을 가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저는 부반장에 대한 마음을 접었어요. 독점할 수 없는 관계에 제가 조금 서운함을 비추자 그 애는 “나에게는 다 좋은 친구들이야. 너도 내 친구들하고 친해지면 안 돼?”라고 하더군요. ‘나도 너에게 그냥 똑같은 친. 구. 라니! 심지어 너의 무수리들하고 친해지라니!’ 추종자들 사이에서 나름 Top3에 들었다고 뿌듯해하며 언젠가 Only One이 되려던 저의 원대한 꿈은 그렇게 허무하고 가슴 아프게 깨졌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살면서 상대의 성별에 관계없이 수시로 사랑에 빠지곤 했어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형태로든 아픔이 되더군요. 아무리 나쁜 연애나 아린 이별을 했어도 다음 사랑이 다가오면 저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다시 ‘Love Dive’ 해버렸지만요. 내가 인생에서 꽤 처절하게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도 나를 그만큼 사랑했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얼마 전 처절한 사랑에 관한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왔어요. “나는 평생 하느님(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랐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요. 내가 하느님(신)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 아니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질투를 낳고 열다섯의 저는 누군가의 ‘Only One’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요. 이제 저는 내가 느끼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운 좋게도 저는 별 노력 없이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중학교 때의 짝사랑은 아픔으로만 남지 않았고, 동성에게도 끌리는 제 감정을 소중히 수용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침 지난달이 ‘Pride Month’였지요. 어쩌다 저도 처음 공개적인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했어요. 사실 그럴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이성애만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깨고 싶어 불쑥 저의 존재를 말해버렸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한다는 건 나를 사랑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요? 이렇게 소라와 속닥거리는 편지를 쓰는 것도 결국 내가 누구인지 간절히 말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일 테죠. 저의 사랑이 식지 않도록, 오늘도 들어주어서 고마워요.
장마를 통과하며, 달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