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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Jul 15. 2024

달라의 교환일기-세 번째 1

내몸의 이력을 나의 말과 글로 기록하는 것 역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겠죠

달리에게


 벌써 칠월 중순이네요.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라던 옛날 노래가 생각나는데 달리도 이 노래를 아는지요? ^^ 제 기억엔 ‘여름’이라는 제목의 노래인데 전 여름이 오면 이 노래가 머리에서 자동 재생됩니다. 


‘여름’하면 여름방학이 떠오르고 하늘의 뭉게구름과 한낮의 뜨거운 더위가 연상되면서 느긋하고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여름에는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을 기다리고 숙제 걱정 없이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며 동화책을 보다가 그것도 지루하면 마루에 누워 하늘의 구름을 세다가 낮잠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그건 어린 시절의 여름이고 갱년기의 저는 여름이 두렵습니다. 바로 땀 때문이에요. 젊은 시절엔 땀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갱년기 증상으로 민망할 정도로 땀이 많아졌어요. 얼굴과 목, 겨드랑이와 몸통에 흐르는 땀이 이렇게 많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그래서 외출할 땐 손수건을 꼭 챙깁니다. 한 장의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다 닦을 순 없지만 그래도 손수건이 없이 외출하면 불안합니다.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기 전에 제 땀구멍이 먼저 활짝 열리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서 옷 색깔에도 신경을 쓰고 몸에 붙는 디자인의 옷은 입지 않게 되었어요. 갱년기를 전후로 몸에 살이 많이 불기도 했고요. 청소년기와 20대 청년기에도 몸에 붙는 옷은 잘 입진 않았어요. 평균치의 몸무게에도 제가 늘 뚱뚱하다고, 더 정확히는 ‘여자 치고’ 제 몸이 크다고 생각하며 먹는 것을 조심했어요. ‘여자 치고’ 라니, 저는 정말 왜 그랬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키도 크고 체격도 큰 저는 늘 제 몸이 작았으면 하고 바라었어요. 나이에 비해 눈에 띄게 큰 키를 보고 놀라는 어른들의 반응이 극 내향이던 어린 저는 부끄러웠어요. ‘이렇게 큰데 여덟 살이라고?’ ‘이렇게 큰데 국민학생이야?’ ‘여자애가 이렇게 커서 어떻게 해?’ 등등 작은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작은 키에 불만을 가지겠지만 전 작은 키, 작은 몸을 가진 여자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달리가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한 바로 그 사랑을 작은 여자들이 더 받는 거 같았거든요. 


‘작고 사랑스럽다’라는 문장은 자연스럽지만 ‘크고 사랑스럽다’라는 문장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키 큰 여자아이인 저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키가 크고 따라서 몸도 큰 저는 사랑받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지만 큰 여자들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무논리의 명제는 저의 무의식에 깊이 남아서 저의 관계들에, 특히 연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관계에 늘 수동적이었고 상대가 저에게 호감을 보여도 지레 밀어내거나 상대의 다정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했어요. 


지금은 여성도 큰 키를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몸집은 크면 안 되어서 다들 운동으로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사실 키가 크면 골격도 큰 게 당연한데 다들 가느다란 몸을 선호하죠. 거기에 탄탄하고 탄력 있는 잔 근육도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몸은 중요하지만 건강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날씬하고 가느다란 몸에 대한 괴상한 집착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 괴상한 집착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재밌는 건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몸무게를 지녔을 때는 살을 찔까 봐 두려워했는데 과체중이 된 지금은 몸무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아마 연애에 대한 욕구가 희미해졌기 때문일 거예요. 잘 보이고 싶은 연인이 더 이상 없어서 말이죠.^^ 


커다란 몸을 가진 여성이든 작은 몸을 가진 여성이든 유독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가혹합니다. 세상은 여자의 행실과 더불어 여성의 몸도 통제하려고 하는데 먹는 것을 통제하고 여성의 식욕을 통제하는 것은 여성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과 같아요. 사실 전 연애를 하던 시기, 제 연인 앞에서 맘껏 먹어본 적이 없어요. 많이 먹는 여자, 커다란 여자는 매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여, 자, 답, 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서로의 욕망을 표현하고 나누어야 하는 친밀한 연인관계에서 전 감정과 욕구에 집중하기보다 제 몸에 더 신경을 썼어요. 더 정확하게 세상의 시선을 더 신경 쓰느라 제 욕망이 무엇인지 조차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러니 그 관계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빨리 끝나거나 식었답니다. 

그래서 사랑을 얻기 위해 열렬한 달리가 참 용감해 보였어요.^^ 

나를 알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제 바닥이 드러나는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그 바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욕망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love dive를 매번 하는 달리의 에너지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를 던지지도 못한 채로 누군가의 only one이 되기만을 늘 바랐는데 누군가의 오직 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타인에게 사랑을 얻기보다 스스로 존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데 여자아이들은 그저 작고 사랑스럽게 큰 몸을 가져도 안 되고 많이 먹어서도 안 되고 힘이 세어서도 안 되었나 봅니다. 


제가 허리가 아플 때 가서 침을 맞는 한의원이 있어요. 의사 선생님은 제 또래의 여성인데 전 이 선생님에게 허리에 침을 맞으며 제 몸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을 하곤 해요. 한 날은 가서 침을 맞으며 갱년기가 되니 땀이 너무 흘러 사람들 보기가 민망하다고 말했더니 온화한 의사 선생님은 평온한 목소리로 “땀이 흐르면 닦으시면 돼요, 땀이 흐르는 건 민망한 일이 아닌데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라고 해서 소리 내서 웃느라 침을 놓은 자리가 엄청 아팠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한다는 건 나를 사랑하기 위한 행위’라는 달리의 문장 앞에서 한참 머물렀어요. 나를, 내 몸을 타인의 시선 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이력을 나의 말과 글로 기록하는 것 역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겠죠. 그래서 올여름엔 흐르는 땀을 잘 닦겠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진 않으려고요.^^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요. 오늘도 제 글 잘 읽어주어 고마워요. 


한 여름 서울에서 소라 드림 

*사용 된 이미지들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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