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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Oct 30. 2024

아는 여자의 새해맞이

멈출 때 비로소 시작되는 혁명

 얼렁뚱땅, 어영부영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나이 들수록 시간의 속도도 빨라져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눈을 몇 번 감았다 뜨자 연말이 되었다. 쏜 화살처럼 속절없이 시간은 가는데 나는 목적 없는 배처럼 망망대해에 떠도는 기분이다. 이 망망대해에 떠도는 기분은 오래된 것이어서 나는 젊은 시절부터 사주 명리학을 기웃거렸고 에니어그램 책을 뒤적거렸다. 상황이 막막할 땐 마음의 갈피를 잡는 것이 먼저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최근 몇 년은 타로와 천문해석학이라는 별자리를 공부하는 중이다. 공부라곤 하지만 솔직히는 노는 것에 더 가깝다.

 운명이니 미래니 하는 것보다 은유와 상징으로 맘껏 상상하는 것이 훨씬 재밌다. 그리고 꿈으로 내 무의식의 건강을 살피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내 마음을 탐색한다. 맞다, 밤마다 꾸는 그 꿈 말이다. 어떤 이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고 어떤 이는 무의식을 살피는 것이 현실에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나는 명리학과 에니어그램, 타로와 별자리 그리고 밤마다 찾아오는 꿈이 세계를 성찰하고 사람을 이해하며 나를 해석하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세상만사가, 인간의 안과 밖이, 빛과 그림자가 현실과 이상, 의식과 무의식이 몸과 정신, 혹은 영혼의 조화 속이다. 이것은 과학적 세계와 동떨어지거나 먼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는 소리만 소리가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경험과 지혜가 집약된, 야박한 과학 신봉자들은 미신이라고 부르는 이 흥미로운 공부들은 너그러운 마음과 열린 태도를 선사해 준다. 


 얼마 전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가는 해를 나누고 오는 해를 격려해 주는 자리를 가졌다. 이런 자리에서 나는 종종 타로를 펼치는데 그때 사용하는 타로카드는 마더피스 타로라는 여성주의 타로카드다. 여성단체의 집단 상담에서 자주 활용되는 카드인데 다양한 여신문화와 신화의 상징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곧 다가 올 한 해의 타로를 뽑고 덕담을 나누다가 나의 카드를 떠올렸다.  

 작년 나의 카드는 정의 카드인데 법원에 있는 그 정의의 여신을 생각하면 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분명한 정의 카드의 의미에는 인과응보가 있다. 몇몇 멀어진 관계들, 일시 정지 중인 작업들 앞에서 그동안 뿌린 씨앗보다 옹색한 수확과 마음을 내어 준만큼 돌아온 온기는 없어서 씁쓸했다. 그런데 다른 이의 타로 카드를 펼치다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상처 준 사람만 기억하는 바람에 웃으며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잊었다. 따뜻한 사람들을 몰라봤던 나도 누군가에겐 서운하거나 모진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정체되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오래 활동하던 지역의 여성들과 공적인 자리에 초대되어 행사도 가졌고 새롭게 알게 된 여성들과는 즐겁게 드로잉 워크숍을 했다. 마음을 나눌 동료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전시를 연결해 준 젊은 작가와는 가끔 산책을 같이 하고 밥을 먹는 동네 친구가 되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부모 돌봄에 당황스러울 때엔 드로잉 워크숍의 참여자인 장년의 언니들이 덤덤하게 위로해 줬다. 삶의 숙련공 같은 왕언니들이 심상하게 해주는 경험담들은 놀라 팔딱거리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서,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어서 까짓 거 인생, 아무려나 싶은 용기가 생겼다. 또 평소 호감을 가지던 작가들에게 협업 요청을 받아 그들의 작업에 그림으로 참여했다. 도통 작업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협업작업을 해본 것이다. 

 한 동료는 내가 내민 그림 뒷장의 작가서명을 보곤 ‘작가님도 좀 자기 이름 앞에다 막 커다랗게 써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무심한 그 말에 내가 젊은 작가들에게 가지던 날 선 비판이 사실은 포장된 질투라는 걸 알았다. 늘 주목받는 그들의 젊음과 기회와 열정을 나는 질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크고 그럴듯한 성취, 주류 사회의 인정만 업적이라고 생각해 나의 작업과 내가 경험한 것들을 스스로 귀히 여기고 존중하지 못했다. 


 올해의 나의 카드는 매달린 사람이다. 물속에서 자라는 노송나무에 한쪽 발을 뱀으로 묶어두고  물구나무를 서는 것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여인이다. 일견 괴로울 거 같지만 여인의 표정은 고통스럽기보단 여유롭고 단정해 보인다. 머리에선 환하게 빛까지 내뿜고 있다. 타로나 신화에서 물은 감정, 정서, 느낌과 무의식을 상징한다. 머리를 물 가까이에 둔다는 것은 내 내면의 깊은 감정과 만나라는 뜻으로 읽힌다. 물속에 담긴 두 손은 마치 내 감정을 만지라는 것 같다. 머리의 중심부를 열고 심장과 가장 가까운 요가 자세가 물구나무서기라고 한다. 한 단계 높은 자아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이 카드는 사실 어려운, 힘든 과정을 상징하는 카드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일 년, 영원이 계속될 것도 아니고 십 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다. 게다가 성숙한 자아가 어디 얻기 쉬운 것이겠는가. 옴짝달싹 못하게 묶여 머물고 멈출 때 비로소 시작되는 혁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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