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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Oct 23. 2024

나이가 든다는 것 3

이번 생이 처음이듯 늙음도 처음이라

 올해 여름과 가을은 ‘늙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팔월과 구월 내내 시니어 워크숍을 하느라 집 밖에서 여성노인들과 함께 했다. 중산층인 여성노인들은 명랑하고 넉넉했다. 노년에 주어진 여가시간을 문화 활동과 봉사활동으로 채우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코로나로 문을 닫은 수영장과 헬스장이 아쉽고 멀리 여행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돈이 주는 윤택함은 몸의 활력도 보장하는 거 같았다. 이 살만한 노인들을 만나면서 집‘안’의 늙은 사람인 내 부모를 떠올렸다. 변화 없는 일상을 느리게 반복하는 내 부모를 바라보는 시간은 평화롭기도 하지만 더 자주 복잡하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엄마와 아빠는 현실의 문제를 막힘없이 처리하던 아직 중년의 듬직한 어른인데 거실의 붙박이 가구처럼 조용해진 현재의 내 부모는 노인이 된 지 오래되었다. 역정도 성냄도 욕심도 단출해지는 노년의 시간을 곁에서 바라보는 건 애틋하고, 슬프고, 쓸쓸하다. 


 점점 청력이 약해지고 말수가 줄 던 아빠가 추석을 앞두고 좀 이상했다. 한 밤 중에 깨어 멍하니 핸드폰을 손에 들고 혼잣말을 했다. 곁에 가서 왜 그러냐고 하니 핸드폰을 들고 끓임 없이 동영상을 찾고 난데없이 노트북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종이 신문을 구독하겠다고 하더니 눈이 침침해서 안과엘 가봐야겠다고 했다. 적당히 대꾸하다가 그만 주무시라고 하고 내 방에 들어왔는데 내 방까지 따라온 아빠는 이미 한 말들을 반복하다가 결국엔 식탁으로 가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술을 마셨다. 다음 날 물어보니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 이번엔 자정을 넘어 들어온 동생을 붙들고 이야길 했다. 늘 늦은 시간 들어와 나가기 바쁜 동생에게 동생의 차가 잘 굴러가냐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십 년도 훨씬 지난 동생의 차가 길을 가다 멈추지는 않는지, 낡은 차를 끌고 일하러 다니면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는지 평소엔 전혀 하지 않는 생뚱맞은 이야길 했다. 동생도 나처럼 적당히 대꾸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빠는 동생 방에 따라 들어가 새 차를 사라고 했다. 아빠는 중년이 된 우리 남매의 방에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성장기에도 조심스레 늘 노크를 했고 잔소리 한번 없던 사람이었다. 아빠는 동생에게 천만 원을 보태 줄 테니 새 차를 사라, 좋은 차를 타야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동생은 필요하면 말하겠다고 하고 마무리를 했는데 듣다 못한 내가 나가서 그만 주무시라고 하다가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빠는 순간 놀라 멍하니 나를 보다가 ‘왜 이렇게 사납게 말하니’라고 느리고 순하게 말했다. 


 아빠는 이번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평소 하고 싶던 이야기이거나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었다. 아빠는 천만 원이 어디서 났을까? 일생을 재단사로 일하다가 노년에는 경비노동자로 일한 아빠는 작년에야 일을 그만두었다. 아빠는 퇴직금을 나와 동생, 엄마에게 나누어 줬는데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겠다고 하는 나와 동생에게 아빠가 주는 마지막 용돈이라면서 똑같이 나누어 줬다.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 수출의 역군이던 아빠가 이젠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걸까. 이렇게 차차 자신을 지우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는 걸까. 

 치매안심센터와 아빠의 주치의를 거쳐 신경과에 가서 mri 검사를 받고 뇌 건강에는 아무 문제없다는 전문의의 소견으로 이 소동은 끝이 났다. 수면제와 술을 함께 복용할 때 나타나는 기억장애로 벌어진 이번 소동은 아빠보다도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늙은 아빠의 치매를 걱정한다면서 사납고 공격적인 건 멀쩡한 정신머리의 나였다. 치매일지 모를 상황과 이 상황이 불러올 현실적인 문제들에 지레 겁먹은 나는 내 감정을 어쩌지 못해 난폭해졌다. 오히려 늙은 부모는 덤덤하고 냉정했다. 아빠는 늙으면 치매는 자연스러운 거라고 했고 엄마는 아이들-나와 동생- 힘들게 하지 말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치료를 받으라고 병원에 가는 것을 주저하는 아빠에게 일갈했다. 그리고 나에게 만약 아빠가 치매이고 증상이 심해진다면 마음 아파하지 말고 죄책감도 갖지 말고 시설로 보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엄마와는 팔월 말부터 내내 치과엘 다니고 있다. 아빠에게는 전문의의 검사와 치료를 권한 엄마는 매번 치과의 모든 치료들을 끔찍해하고 의사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앞으로 발치를 더 하고 틀니를 해야 할 엄마는 늙는 건 치사하고 서글프다고 종종 말한다. 

 삶은 얄궂어서 몸이 허물어지는 것보다 정신이 먼저 아득해지기도 하고 정신은 맑은데 몸이 먼저 쓰러지기도 한다. 뭐가 더 나은 건지 혹은 더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번 생이 처음이듯 늙음도 처음이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보호받고 돌봄을 받던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딸은 나이 든 노년의 부모와 상호 돌봄의 관계로 어느덧 접어들었다. 내게 이 시간은 내 미래를 엿보는 시간일 것이다. 나를 이 세상에 내어놓은 두 존재의 나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별을 감당하는 것도 나이 드는 것의 한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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