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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Oct 16. 2024

나이가 든다는 것 2

알면서도 속아주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지나치는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 삼 년을 함께 뜨개모임을 하던 철산동 여성들과 노년세대를 위한 뜨개 워크숍을 하게 되었다. 봄부터 지역문화재단과 기획자에게 제안을 받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취소되지 않을까 했는데 대면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곳에서 줌으로 각종 회의나 강좌, 활동을 하는데 대면으로 하는 것은 노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인 이유가 컸다. 참여를 신청한 10명의 참가자는 6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여성노인들이었다. 

 워크숍 당일, 재단에서는 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 삼십 분이나 빨리 오기를 요청했다. 참여자의 특성상 보통 한 시간 정도는 빨리 오니 미리 와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럴 거면 뭐 하러 시간을 정하나 싶은 생각에 살짝 짜증이 일었다. 그런데 정말 워크숍 첫날, 무려 한 시간은 일찍 오신 분이 절반은 되었고 단 한 분도 지각없이 20분 전에 모두 모였다. 여러 기관들에서 많은 강좌와 워크숍을 진행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워크숍은 철산동 뜨개 모임의 할머니가 선생님이 되어 지역의 노인 분들에게 뜨개를 알려주며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거였다. 워크숍을 제안받았을 때 ‘내가 아는 게 뭐 있다고 가르쳐’ 하던 철산동 할머니도 그 자리에 참석한 광명의 할머니들도 누구 한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열성적이었다. 이틀 연속 진행한 워크숍의 제목은 시니어 손 솜씨 워크숍이었는데 강사도 참여자도 모두 ‘시니어’여야 했다. 노년을 칭하는 세련된 말을 시니어라고 재단에선 생각한 모양인데 시니어란 영어를 참여한 분들은 얼마나 알까 하는 냉소적인 생각을 잠시 했었다. ‘어르신’이던 ‘할머니’든 아니면 ‘시니어’든 무엇으로 명명하던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내 눈앞에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즐거워하는 열 명의 나이 든 여자 사람이 있었다. 

 

이틀째가 되는 날, 여든이 넘은 한 분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커다란 바구니를 꺼냈다. 양말목으로 직접 만든 바구니 안엔 목걸이와 팔찌, 반지 등등이 가득 들어있었다. 한 때 광명의 번화가에서 선물 가게를 했는데 그때의 물건들이라고 했다. “나도 이렇게 와서 배워 가는데 선물이야”라고 무심하게 말하고는 다시 뜨개질에 몰두하셨다. 이 날의 워크숍은 뜨개로 팔찌를 만드는 거였다. 팔찌를 만든다고 할 때부터 “늙은이가 무슨 팔찌야, 다른 거 해, 쓸 수 있는 걸 해야지. 난 수세미나 뭐 이런 거 할 거야”라고 여러 번을 외치시던 분이 있었는데 막상 팔찌를 만드니 무려 깔별로 여러 개의 근사한 뜨개 팔찌를 만들었다. 댁에 가서 팔찌를 만든다고 하니 다들 좋아했다면서 말이다. 처음 뜨개코를 잡아보시는 분도 계셨는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코 한 코 뜨개질에 진지하게 집중했다. 중간에 지칠 만도 했지만 조용히 끝까지 하시다가 가셨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뜨개질 장인처럼 솜씨가 뛰어났는데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이 워크숍의 대표 진행자로 와 있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어쩜 이렇게 잘하시느냐는 내 말에 ‘우리 젊을 때 다들 뜨개질해서 애들 옷도 해 입히고 그랬지, 그때 기억으로 하는 거지 뭐’라고 덤덤하셨다. 이틀 동안 좀 친해진 듯해서 알랑 방귀를 뀌며 ‘연세 여쭤 봐도 될까요?’라고 한 나를 혼쭐 내신 분도 계셨는데 당신은 나이를 물어보는 게 제일 싫다고 하셨다. 그러니 그 옆에 함께 오신 친구 분은 “그래? 난 상관없어, 칠십이 뭐 어때서”라고 하며 동의를 구하는 듯 앞자리 분을 바라보니 이 분이 펄쩍 뛰며 ‘난 아직 육십 대에요’라고 하는 바람에 다들 한바탕 웃었다. 


 노년 세대를 위한 문화 프로젝트와 워크숍이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노년을 대상을 하는 문화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상화니 타자화니 하며 비판한 적도 많고 여전히 이 생각은 유효하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재료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무료 강좌에 찾아와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사업을 마련한 기관들은 마치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혹은 때 쓰는 아이처럼 노인을 대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나이를 묻는 걸 무례한 일이라고 늘 성토하면서 정작 나이를 물어봤으니 말이다. 사실 아이와 노인은 많이 닮기도 했다. 생각이 바로 말이 되어 나오고 자기 기분에 숨김없이 솔직하다. 그런데 젊은 세대라면 예민할 영상과 사진 촬영, 인터뷰들에도 이 오래 산 사람들은 기분 좋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응해줬다. 단지 이틀의 워크숍이었지만 재단이 원하는 방식들에 다 맞춰주는 여성노인들을 보며 대상화, 타자화를 하는 건 정작 나였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기준과 판단이 헐렁해지면서 웬만하면 상대에게 적당히 맞춰주는 태도들이 오히려 여유작작으로 보이기도 했다. 알면서도 속아주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지나치는 모습 앞에서 잘난 체하던 어설픈 정치적 올바름 따윈 빛을 잃었다. 


 워크숍을 시작하며 이 열 분의 여성노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친근하게 할머니라고 할까, 어르신이라고 할까 하다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오래 산 관대한 늙은 사람들을 불러 줄 가장 적당한 호칭이었다. 무엇보다 ‘선생’이란 뜻에 이보다 어울릴 수가 없었다. 

-다음 발행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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