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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Jan 18. 2022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바다출판사, 2018)


Roma(2018)



2018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 <로마>를 세상에 공개했다.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촬영상, 감독상까지 3관왕이라는 영예를 안은 이 걸작이 품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로마(2018)>가 유년시절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밝혔는데, 주인공은 정작 감독 본인이 아니라 어린 시절 그와 함께 했던 가정부 '클레오'(극 중 이름)였다. 그는 클레오를 주인공으로 상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클레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상처와 나의 상처 나아가 한 가정의 상처, 멕시코라는 나라의 상처 그리고 전 인류의 상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가 클레오였다."

(<씨네 21>, 이주현, 2019.01.03)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클레오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유년시절 실제로 자신을 돌봐주었던 리보(Liboria Rodríguez)를 당시 어린아이의 시각이 아닌 어른이 된 현재 자신의 시각에서, 그녀를 가정부(caretaker)가 아닌 그 시대 '한 명의 여성(individual woman)'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누군가의 힘든 삶을 외면했다'는 일말의 죄책감이 존재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

"Instead, he wanted to craft a film that peered into the past through the prism of the present, an objective experience seen from the understanding he has as an adult" ······


"It was probably my own guilt about social dynamics, class dynamics, racial dynamics"······


"Rodríguez was an individual, a woman with needs and an internal lifem not simply a caretaker there to bring him smoothies and do his laundry."······


(<Variety>, Alfonso Cuarón on the Painful and Poetic Backstory Behind ‘Roma’, Kristopher Tapley, 2018.10.23)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로마>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개인의 서사가 결국 시대의 보편성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클레오의 삶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시대 수많은 익명의 여성들의 삶이기도 했던 것이다.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역사가 될 수 있나?



  인류는 과학혁명으로 말미암은 '진보하는 역사' 속에서 두 차례 커다란 세계전쟁을 겪게 되자, 확신에 차 있던 기존 관념들에도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전개된 '모더니즘(Modernism)'의 결과가 인류의 삶을 폐허로 만든 '두 차례 세계대전'라는 것은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합리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글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의 사고방식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사상 기조가 역사학의 연구방법에도 의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정 인물의 특정 시각으로 점철된 굵직한 사건들을 토대로 서술되던 기존의 역사에 의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개인의 삶'으로 확장시키는 미시사(Microhistory, 微視史)출현한 것이다. 결국 '진보하는 인류'를 위해 탐구해야 할 역사는 복잡한 시대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같으면서도 각기 다른 다양한 개인을 주체로 삼아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졌다.




개인의 삶이 곧 역사가 된다



이미 우리는 개인의 삶이 하나의 역사라는 것을 경험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라 여겼던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실은 한 없이 나약한 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 했을지를 먼저 헤아리게 된다. 우리들의 시각도 한 개인을 넘어 보이지 않던 삶의 맥락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 시대를 관찰할 수 있는 시야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중차대한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그 시대에 묶여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한다. 또 이 사회가 어떤 가치를 담고있고 설복하려하며, 그것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피면서 질문하고 다시 대안을 고민한다.  이것이 곧 인류가 진보하는 방식이 된다. 그렇기에 역사를 서술하는 주체 역시 다양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살피려 하는 생각까지는 못하는 것 같다. 기술의 진보가 너무 빠른 나머지 우리의 삶을 추적하기 어려워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가까이 닿아 있어서 사소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깊은 우물 속에 빠져있는 나머지 우리네 인생이 담긴 우물의 형태를 놓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과연 우리가 기록하는 자기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바다출판사, 2018)에서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가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에서 개설한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 강좌 내용을 정리하여 묶은 것이다. 여기서 세컨드 스테이지는 ;정년 이후의 삶'을 의미하며 수강생들 역시 은퇴한 시니어들이다. 책의 주 내용은 저자로부터 '자기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지'를 배운 수강생들이  자기 역사를 스스로 기록하고 이에 '강의자'였던 저자가 코멘트를 달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의 두 가지 의의


 저자는 책의 서론에서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데 두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밝힌다. 그중 하나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록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자신이 몸담았던 시대의 역사를 담는 것이다.



 첫 번째 의의는 수강생들이 적은 머리말과 후기를 통해 자신을 위한 기록이 어떤의미였는 지를 밝힌다. 수강생 중 한 명이었던 '이케다 치카코' 씨는 강의 마지막 날까지도 자기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을 사소하게 여긴 나머지 그 의미를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결국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별 것 없는 자기 역사. 마지막까지 그렇게 생각하였다.


 <중략>


 웃고 말았다. 55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드러난 한 사람의 인간적 몸부림, 에너지, 당참, 덧없음, 사랑스러워졌다. 누가 읽지 않아도 좋다. 읽을 필요도 없다. 한 인간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두 번째 의의는 현대사 속 자기 역사라는 주제로 시작해 자신이 속해있던 시대상을 조금 떨어져서 관찰해보는 것이었다. 이 강좌의 수강생 대부분이 일본 전후사(戰後史,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전사(戰前史)와 전후사(戰後史)로 구분한다)에서 꽤 많은 변곡점을 겪은 세대였다.


  그들은 일본의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이자 전공투(全共闘) 세대였다. 또 고도성장기를 보낸 세대이자 버블 붕괴를 겪은 다사다난했던 세대였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였다.


 저자는 수강생들이 겪은 근현대사 속 자신의 삶 함께살피면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갖는 의의를 풀어나간다. 실제 참여자들이 작성한 이야기들은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보편의 경험으로 확장되는지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자신의 삶이 어떠한 시대 맥락에 위치하는지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꾸준히 살아가고
꾸준히 묻고
꾸준히 기록하는 것



 저자는 마지막으로 '자기 역사의 결말'을 어떻게 쓰면 좋을 지에도 조언을 남긴다. 그 답은 단순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을 것,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감상으로 끝내도 좋으며 그저 감개무량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저자는 '아직 오지 않은' 자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첨언을 적어두는 것도 좋은 자세라고 전한다. 이때 저자는 미래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적어보는 것을 첨언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예시로써 제안한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것 역시 역사라는 기록이 가져다주는 하나의 효용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마지막 코멘트로 수업은 마침표를 찍는다.



"한 인간의 생각은 결코 멈춤이 없다.

갑자기 죽음이 찾아올 수 있으니 자신에 대해 할 말이 남아있는 한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끝이 없을 것이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역사다. 당신이 곧 인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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