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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May 05. 2023

목형이 뭐예요?

목형(木型)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내는 형상이다. 하지만 인쇄업계에서 목형을 일컫는 말은 나무 합판에 원하는 형태의 구멍을 내서 그 구멍으로 칼을 박아낸 목판을 의미한다. 나무는 도화지고 구멍에 박은 칼은 그림이 되는 것이다. 


첫 출근날 나를 맞이해주셨던 분은 나무 합판에 그려낼 '도안'을 제작하는 도안사셨다. 그리고 직급은 실장이셨다. 이제 막 신입으로 들어간 내가 맡은 일은 4억 5천만원 가량의 독일제 레이저 가공기계로 나무합판을 물리고 그 합판은 지정된 사이즈에 맞춰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구멍을 내면 칼을 원하는 모양과 길이로 재단해서 구멍에 맞춰 칼을 박는 일을 숙련공들이 해낸다. 


 첫 날 실장님은 내게 인쇄업계의 협업시스템을 알려주셨다. 목형이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 위치한 일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이나 광고회사에서 주문을 받아 요청하면 인쇄업체는 종이 원단에 맞춰 인쇄를 하면 원하는 모양에 맞게 칼을 박아 목형 제작을 해서 도무송 기계로 찍어내는 것"


 인쇄라는 게 꼭 종이에 프린트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가죽이나 플라스틱 심지어 한지도 원단 소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원하는 모양으로 찍어내려면 목형을 만들고 그 목형으로 인쇄물에 찍어내는 게 도무송이라 부르는 톰슨 기계의 역할이다. 도무송은 옛 일제언어의 잔재이다. 


  목형 제작으로 많이 하는 것은 다양한 모양의 상자들이다. 일반 택배 박스같이 단순한 게 하니라 패키지라 불리는 멋스러운 모양의 상자들 말이다. 화장품 상자, 캔들 상자, 선물 상자 그리고 꾸불꾸불한 장식들이나 스티커들도 목형으로 만든다.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만큼 오래걸리기도 하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 일반적으로 쉽고 단순한 모양의 목형을 제작하는 업체들은 주로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다고 한다. 높은 임대료와 기반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목형 제작 업체로써 신경써야 할 부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모른다. 예를 들어 화장품 박스는 소비자들이 여러번 열고 닫는 경우가 많아 박스 뚜껑 부위가 걸리지 않도록 해야한다던가 플라스틱 소재는 날카롭게 재단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거나 접지 부분을 딱맞추면 원단이 터질 수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 알아야 할 게 많은데 아직은 레이저부터 무리 없이 다루는 게 먼저일 듯 싶다. 더 깊은 숲보다 나무를 먼저 하나하나 살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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