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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Mar 18. 2024

어?! 그거 외제칼로 해야돼요!

 선임의 배려로 철형 작업을 시작한지도 세달 째. 아침부터 쉴 새없이 내려오던 작업지시서들을 해치우다보니 어느새 레이저 기계소리는 잠잠해졌다. 얼마간에 여유가 생기니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목판을 받치는 조방에 몸을 기울이고는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금새 자리잡고 있다. 


 본래 이런 때에는 칼을 구부려주는 벤딩기계의 데이터를 점검해서 수정해주거나 부품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해주는 게 좋다. 주변정리도 틈날 때가 아니면 막상 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나같이 초보자의 경우 작업을 마친 도안 데이터를 복기하며 칼을 뽑아낼 때 데이터를 외우거나 특이점들을 파악해서 다음 작업에 시험해보는 편이 좋다. 아무튼 지금만큼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그러다 레이저 담당 선임의 몸이 분주해진다. 타닥타닥 키보드와 마우스가 빠르게 눌린다. 작업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곧장 내 컴퓨터에서 메인 공유 폴더를 열어 새로 내려온 파일을 연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맞뚜껑 박스가 12개나 앉혀져있다. 레이저 가공 중에 칼을 최대한 뽑아놔야겠다. 


 그저 컴퓨터 데이터 대로 칼이 뽑히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하드웨어는 어찌됐든 소모품이다. 그러니 오차가 발생한다. 컴퓨터는 거짓말하지 않지만, 융통성이 없어서 한 번 틀어지면 죄다 틀어진다. 인간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간극을 조율해야하는 때이다. 


 "뚜껑은 1.3R 기준 앞 선에 0.3을 더해준다."


"4R이 74도의 각도로 그려져있다면 아크 파워를 0.5 정도 올려주고"


"여긴 두개의 칼이 맞닿을 때 한 칼이 다른 한 칼이 얹히도록 리핑을 쳐줘야지. 그런데 이 각도면 얼마의 길이를 빼야하지?"


"음.... 여긴 하나만 뽑아서 대보고 수치를 정해보자"


그렇게 고민하며 작업하는 사이 긴 시간이 지나 레이저 가공이 끝마쳐졌다. 


레이저 기계가 있는 장소로 발을 옮기며 목판을 건네받는다. 아대와 핀을 이용해 좁은 틈의 각을 만들어주고, 집게로 눌러 더 세심하게 잡아준다. 하나. 둘. 세~엣. 칼이 잘 맞아들어간다. 목판이 깨지는 곳 없이 부드럽게 들어가면서도 잘 고정이 된다. 


 그렇게 8개 부분 중 5개를 맞쳐갈 때였다. 옆에서 꼬불이(곡선들이 오밀조밀 모여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도안)작업을 이제 막 끝마치고 작업지시 메뉴에 작업완료를 체크하던 선임이 내게 다급하게 말한다. 


"어?! 이거 외제칼로 해야돼요!"


 아뿔싸. 작업지시메뉴에 적힌 비고사항을 다시 살핀다. 


"S.W."


외제칼로 작업하라는 표시다. 일반적으로 아무런 표시가 없다면 한국에서 생산한 칼로 하는데, 이걸 미쳐 확인하지 않은 탓이었다. 칼은 칼대로 버렸고 시간도 허비했다. 그 뒤로 작업물이 계속해서 쌓이는 상황에서 해서는 안될 충분히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책임한 실수를 저버린 것이다. 


 이제 박은 칼을 다시 빼내야 한다. 좁은 각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용했던 집게로 이제는 빼내기 시작한다. 칼을 다시 재활용하는 일은 없으니 칼이 긁혀서 죽어도 된다 그런데 좁은 각으로 구부러진 칼들이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합판 조각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울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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