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 일상
새벽 늦게 동이 떠오를 즘 동생의 기상에 바통 터치를 하고 잠이 들거나 이른 아침 눈을 떠서 부스스한 동생과 대화로 아침을 시작하거나, 불규칙한 수면패턴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열과 성을 다해 아침을 준비하던 난 사라졌고 대신 점심만큼은, 저녁만큼은 꼭 챙겨주겠노라며 쪽잠을 자다 일어나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11시야!!! 벌써 3시야!! 벌써...!!!
별다를 것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 속. 여름이라고 하기에 무색하도록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 안은 사늘했다. 가끔 해를 쬐러 뒷마당에 나가서야 따가운 햇살과 건조한 공기가 여름임을 알려주었다. 8월의 둘째 주가 다다를 무렵, 이제는 능숙하게 땅콩이의 기저귀를 갈게 된 난 잊지 못할 사건을 경험했다.
다리를 올리고 새 기저귀를 재빠르게 간 뒤 물티슈로 뒤처리를 하는 순간이었다. 예고도 없이 물티슈를 들고 있던 오른손 위로 고구마 무스 같은, 아니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어울릴 듯한 황금이 떨어졌다. 재빨리 물티슈를 손바닥에 펴 들고 받아 들었다. 분유를 타던 동생에게 땅콩이가 놀라지 않을 정도의 수선을 떨며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물대포를 쏘았던 땅콩이가 이제는 따뜻하고 뭉근한 그것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고 웃었다.
가끔 소나기처럼 비가 내리곤 했다. 비가 올 때면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비냄새조차 다르게 느껴지는 이국적이 이 공간이 평안했다. 다만, 비가 오고 습할 때면 한국의 모기와는 다르게 체격이 큰 모기가 어디선가 출몰했다. 물리면 그 붓기의 크기가 감당하기 어려워 긁고 때리고 갖은 수를 다 써야 했다.
모순을 다 읽고 나니 이제 원서를 읽어 볼까 도전해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산 노멀피플, 과거 졸작에서 친구들이 디자인한 라인드로잉 느낌이었어서 구매했는데 남동생이 그거 집에 있는데 왜 샀냐는 말에 어쩐지 익숙하더라 하고 머쓱해했다. 심지어 사두고 읽지 않았던 책, 한글판도 있는 책. 그럼에도 새로우니 도전을 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장을 덮었다.
8월 10일 한 노부부가 찾아왔다. 동생은 분유를 타고 있었던가,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노신사가 물었다.
에이미 집 아닌 가요?
하마터면 아니라고 할 뻔했다. 동생의 영어이름을 들었던 게 떠올라 맞다고 했고 기다려 달라고 하며 동생을 불렀다. 잠시 주차해 둔 차로 돌아간 노신사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나무로 짜인 갓 니스칠을 한듯한 장난감 박스를 들고 돌아왔다. 그 나무 상자에는 땅콩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직 날아가지 않은 니스 냄새, 이름을 새긴 홈 사이로 쌓여있던 톱밥. 부드럽게 열고 닫히던 뚜껑.
노부부가 돌아가고 동생은 가게 손님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름과 관련한 대화를 하다 친해졌다고 했다. 그 외에도 종종 제부손에 들려온 누군가의 선물들.
기프트 콘이 아닌, 누군가가 보낸 선물용 택배가 아닌 선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고심하고 고심한 흔적이 묻어 있는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뭐가 갖고 싶은 지 묻고 주문해라는 말을 들으며 선물이란 단어가 주는 따스함이 사라진 요즘. 와이파이가 느린 만큼 이곳은 아직 선물에 대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또한 동생을 기준으로 4년, 제부를 기준으로 7년 두 사람이 이곳에서 잘 살아왔음을 반증하는 방문객들의 따스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따스함 속에서 자라날 땅콩이가 사랑스러웠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길 바라며 작은 이벤트가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곧 땅콩이의 속역류와 태열이 점점 심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