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 모순
도서전 당시 함께 부스를 지키던 동료들은 양귀자 작가의 모순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책이 출간되고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띄던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항상 진열되어 있던 모순.
하나의 선, 그 위의 새 두 마리가 있는 양장책. 내가 캐나다 동행 책으로 모순을 택한 것은 필연이었다. 나는 표지가 예쁘면 사고, 랜덤으로 펼친 페이지의 문구가 좋으면 사고, 뒤표지 문구가 마음을 흔들면 사는 줏대 없는 잡식 독자다.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겪으며 그 과정이 재미있어서 시작한 북디자이너의 길도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결정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이런 선택들 덕분에 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주는 동료들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제는 그 한 문장이, 그리고 그 한 권의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로 나오게 되는지 체득했다.
그렇게 함께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를 함께한 모순은, 사실 20일이 지나도록 펼쳐지지 못했다. 캐나다의 휴일,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어느 날. 결심한 듯 책을 펼쳤다. 읽다 보니 빠져드는 미친 흡입력. 그리고 눈물범벅이 되어버린 결말.
내가 이모의 입장이기 때문일까. 내가 이모와의 관계가 더 짙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숱하게 가슴을 후비는 문장 때문이었을까. 동생에게 이 책을 넘겼다. 괜스레 이 책을 읽은 이곳에 작은 흔적을 남기려는 듯. 내가 고른 문장들이 동생에게 나를 추억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 까하는 기대와 함께.
아기를 키우는 최전방에서 함께하는 나날 들 속에서 타인이라고 자신을 구분 짓고 서운해하지 않으려 하는 난, 어느 날은 등 뒤로 세 사람을 느끼고 어느 날은 세 사람 안에 서 있다. 새로운 음식을 소개해주며 신나 하는 모습이나 뭔가 계속해주려는 모습들. 배려하는 말들이 오해가 되어 뒤돌아서 사실은 이랬어 라며 나누는 대화들.
아침, 새벽, 점심, 저녁, 밤의 구분이 없이 눈을 떠서 식사를 차리고 음식을 만들고 치운다. 익숙해지는 듯하다가도 멀어지는 그런 하루를 평범한 일상인 듯 보낸다. 기록을 하거나 놓치거나 하는 날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인생은 한 장의 사진이 아냐, 잘못 찍었다 싶으면 인화하지 않고 버리면 되는 사진 하고는 달라 -모순
책 한 권이 타국에서의 3주와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잊는 것도 한순간이고 기억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저 기록의 차이가 아닐까. 우린 오늘을 기록하는데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할까. 가까이 있고 멀리 있고 와 상관없이 새로운 곳에서 보이는 그 무언가는 사람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일상이 되었다고는 해도 결국 이곳은 내게 여행이고 여행이란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