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자친구가 군입대 하던 날 (현 남편)

국방부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다!

by 진소은

약 8년 전, 남자친구가 입대한 날 적었던 일기

결국 오늘은 왔고, 남자친구는 입대를 했다. 나는 전날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학교에 갔다. 남자친구는 2시에 입소식을 했고, 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슬픔이 가득한 기분이다. 믿을 수 없다. 남자친구가 이렇게 군대에 간다는 게... 남자친구를 1년 하고도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나라에 빌려준다는 사실을, 이젠 평소와 같이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다. 정말 힘들다....

남자친구 입대하던 날 적었던 일기 중에 한 부분인데, 그때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힘들었던 그 마음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시에는 지금보다 복무기간도 몇 개월 더 길었고, 핸드폰 사용도 안 되던 시절이라... 많이 슬펐다.


추억의 전역일 계산기

내 손으로 결정된 입대 날짜

남자친구의 입대날은 내 손에서 결정됐다. (현 남편)

둘 다 교회 수련회에 청년 자원봉사자로 가있을 때가 부대 신청하는 날이었는데 형제들은 짐 옮기러? 어디 다른 건물에 가야 해서 바쁜 남자친구 대신에 내가 입대를 신청하게 된 거다.


남자친구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4월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갔는데 군대 보내기는 싫고~ 하지만 좋은 날에 가야 하고~ 그래서 싫지만 4월에 꼭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딱 되어서 수강신청하듯 창을 열었다. 처음 보는 화면들이라 버벅거리다가 4월 날짜를 겨우 클릭했는데 이럴 수가! 마감이었다. 창이 새로고침됐다. 안돼~ 그다음 보이는 대로 내 생각에 가능하겠다 싶은 때로 클릭했고... 4월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여름이 오기 전 늦봄, 남자친구 입대날이 확정됐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지 900일쯤 됐을 때였다.


남자친구가 입대한다니... 군대에 간다니...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니...

마음이 너무 힘들고 슬퍼서 엉엉 울었다. 마침 자매들 쉬는 시간이었는데 친구들이 하나둘씩 숙소 간다며 자리를 비켜줘서 나 혼자 강당 노트북 앞에 앉아서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만 당시 20살 초반이었던 나랑 내 친구들은 거의 곰신이거나 군입대를 앞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그게 크게 중요한 이슈였다ㅋㅋㅋ


입대날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앞섰고 데이트하고 나서 남자친구랑 헤어지는 게 너무 싫었다. '얘 없이 어떻게 살지?' 이 현실을 정말 부정하고 싶었다.


남자친구는 혼자 남을 나를 생각하면 걱정되고 마음이 아프지만, 군대만 생각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고등학생 때 나를 안 만났더라면 바로 군인으로 입대했을 수도 있을 만큼 군인을 하고 싶어 했어서... 군대 가기 싫다고 우는 남자친구들도 있다는데 이렇게 씩씩하게 군대를 맞이(?)하는 모습에 안심이 되긴 했다.


입대 전 마지막 데이트는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에서 데이트하고 사진도 찍고 혹시나 이게 마지막 데이트가 되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마음이 심란했다ㅋㅋㅋㅋㅋㅋ


시간이 흘러 입대날이 다가왔고, 남자친구 가족들과 남자친구와 같이 입대 전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남자친구 부모님이 나를 태워다 주셔서 남자친구랑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져야 했다. 집 앞에 내리고 차 창문으로 나한테 손 흔드는 남자친구의 팔만 보고도 눈물이 펑펑 나서 혼자 집 앞 놀이터에서 20분 넘게 울고 있었는데 나 우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집 가자마자 전화해 준 남자친구... ㅠㅠ 살면서 집 앞 놀이터에서 그렇게 눈물콧물 흘리면서 울어본 건 처음이었다


남자친구 입대하는 날에 나는 따라가지 않고 학교에 갔다. 학교 수업을 뺄 수도 있었겠지만, 마지막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안 가겠다고 했다.


입대날 아침부터 과제 때문에 바빴지만 자취방 가는 길에 과제하면서도 남자친구 연락에 바로바로 답장하려고 노트북과 핸드폰 두 개 동시에 집중했다. 자취방 가서 밥 먹는데도 입맛이 하나도 없고, 그냥 속이 너무 답답하고 이제 2년 동안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게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자취방에서 한 번, 학교 가면서 한 번. 남자친구랑 통화 두 번 했는데 이게 마지막 통화일까 이게 마지막 목소리일까 맘 졸이면서 전화받았는데 그때도 교수님 심부름하고 있어서 온전히 남자친구한테 집중 못한 것 같아서 참 속상했다.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한테 계속 사랑한다고 걱정 말라고 말해주던 건 생각난다. 나는 슬프지만 애써 웃으며 사랑한다고 했는데 군대 가는 거 설레하던 남자친구 목소리는 진짜 병영캠프 가는 것 같았다는.... ㅎㅎㅎ


교수님께 가면서 눈물이 핑 돌았지만 맡은 일을 해야 해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교수님 심부름하면서도 간간히 남자친구랑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핸드폰에 집중했다.


친구들도 나한테 일부로 남자친구 군대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친구가 조심스럽게 "그분은 가셨니..?" 이랬는데 울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길게 말을 못 하겠어서 "아직! 두시에 들어 가!"라고만 했다. 남자친구가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문자랑 카톡을 해줬다. 나한테 계속 사랑한다고 말해주는데 내가 남자친구 연락 없는 동안 남자친구 사랑에 대해 의심할까 봐 나를 생각해서 많이 표현해 주는 것 같아서 참 고마웠다.


남자친구랑 진짜 안녕하고 나서 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 때는 정신없이 기말고사 과제 완성하느라 슬플 겨를이 없었는데 희한하게도 집중이 안 돼서 글자를 계속 다시 읽었고, 방금 뭘 말했는지도 기억을 못 했다.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일을 했더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남아있었나 보다.


잠시 쉴 때 남자친구 어머니께 남자친구 손 편지 주소가 와있었다. 손 편지를 적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나면서 남자친구 생활관에 편지 젤루 많이 보내는 1등 여자친구가 돼야겠다는 의지에 불타서 잠시 너무 설레고 재미있었다. (내조의 여왕이 될 테다!!!)


그리고 남자친구 어머니께서 또 카톡을 보내주셨는데 남자친구가 연병장에서 경례하는 마지막 인사 모습이었다. 그 영상을 보니까 웃음이 피실 피실 나왔다. 친오빠가 훈련소 들어가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영상만 봐도 그 현장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군기 바짝 들어서 진지한 표정 짓고 충성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귀엽고 웃기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벌써 군대놀이에 흠뻑 빠졌구나 벌써 군인 다 됐네' 싶어서 너무 귀여우면서도 안심이 됐다.

그렇게 연습하던 경례를 하는 모습에서 나는 군인이다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ㅋㅋㅋㅋㅋ 신기하게도 그 영상을 보고 나니까 안심이 되면서 걱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수업 잘 마치고 친구들이랑 카페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과 버스에서 곰신 어플을 많이 봤다. 내가 적은 인사 글에 댓글이 15개나 달려서 뿌듯했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남자친구가 막상 군대에 가면 기대한 만큼 실망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재미는 없고 힘들어서 안 맞는다고 느끼고 괴로워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처럼 군대 좋아한 사람이 있나 싶어서 경험담을 들어보려고 남자친구의 군대 사랑에 대한 글을 적었다. 다행히도 내 남자친구 같은 분들이 몇 명 있었다 ㅋㅋㅋㅋㅋ


어떤 분의 남자친구는 편지에 온통 군대 밥 이야기라고 했다. 분대장도 했는데 본인이 생활관 반장이라고 엄청 좋아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자대 가서는 선임 이름 외워야 칭찬 듣는다고 그거 외우느라 정신없어서 연락도 뜸하다고 했다. 뭔가 서운할 여자친구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너무 웃겼다.


내 남자친구가 적응은 잘하되, 군대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나한테 연락하는 일에 소홀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어서 걱정은 하나도 안 했다. 그저 한 달 동안 무사히 훈련받기를 바랄 뿐! 너무나 바르고 양심적인 사람이라 혼자 힘든 일 다 맡고 몇몇 양심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아휴 그래도 마음이 넓어서 그런 것도 이해하고 넘길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


남자친구가 참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만나는 동기나 선후임은 진짜 복 받은 거다! 그런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나도 참 복 받았고


아직은 슬프지 않다. 그 영상을 본 후로는 그냥 괜찮다. 남자친구 생각이 날 때면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신났겠네'이런 생각이 든다. 아직은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나고 그렇지는 않다. 사실 군대 갔다는 게 안 믿기기도 하고 정말 병영 캠프 한 달간 간 기분이랄까


훈련소 한 달만 이렇게 지내면 그다음부터는 면회도 가고 연락도 하고 쭉쭉 진급하는 일만 남았으니까!

우리 둘 다 각자의 위치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잠깐 말했듯이 남자친구가 가기 싫다고 울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그랬으면 너무 마음 쓰이고 속상했을 텐데

오히려 너무 좋아하니까 안심이 된다. 제발 그 모습이 군생활 내내 지속되면 좋겠다ㅠㅠ


그렇지만 남자친구는 내가 봐도 군생활 참 잘할 것 같다. 누가 시키는 것에 대해 자존심 세우지도 않고

유순해서 뭐든 웃으며 넘기고 맡겨진 일이 있으면 너무 좋아하고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고 몸 쓰는 거 운동하는 거 전우애 의리 우정 이런 거 참~좋아하는 애니까 군생활 완벽히 잘 해낼 것 같다. 아프지만 않으면 좋겠고,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