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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나에게

미화된 과거에 빠져 추억여행하는 건 이제 그만!

by 진소은

부모님 댁에서 오래된 내 추억상자 두 개를 챙겨 왔다.

자취생이었던 내가 신혼집이 생길 때까지 부모님 댁에 맡겨뒀던 건데 드디어 가져오게 된 거다.

하나는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추억 상자고, 하나는 어릴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받은 편지들을 모아둔 상자다.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상자에는 우리 연애 때의 추억이 가득 담겨있다. 남편한테 받은 연애편지, 남편 훈련병 때 받은 편지, 커플 폰 케이스, 인화한 커플사진들, 남편한테 받은 선물들...

이 추억들은 남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현재진행형 추억이라서 그런지, 꺼내볼 때면 웃음도 나고 행복하고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추억들인데, 편지 상자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랄까?


나는 아버지의 직업상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녔다. 부산, 대구, 울산, 서울, 춘천, 김천... 정말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봤다. 초등학교 때는 이사를 3번 했다. 중학생 때부터는 한 지역 내에서 이사를 여러 번 했기에 다행히 그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으나, 대학 갈 때는 본가랑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일할 때는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났기에 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했다. 자연스레 나한테는 "영원한 관계는 없다 지금 함께하는 이 사람과도 나중에는 어떨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됐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다 보니 지나온 시절의 친구들을 종종 떠올리며 그리워할 때가 자주 있었다. 물론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지나온 시절이 그립거나 친구들이 그리울 때가 있었지만 그때는 어렸을 때라 친구관계가 그렇게 깊지도 않았고 어릴 때 친구들과 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보니 그리 슬프진 않았는데 고등학생 때 지나온 시절과 친구들은 그리워서 슬프기까지 했던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대학생이 되고 가족도 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고 그때가 너무나 그리웠다.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리워하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시기다 보니 너무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도 다 각각 다른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돈도 없어서 서로 만나러 갈 수도 없었고 대학생활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친구들이 너무 그립지만 만날 수 없고, 이젠 각자 상황과 환경이 달라져서 다 같이 모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 학교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쭉 함께 생활했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보니 추억도 많고 나눈 정도 많았다. 교회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주일이면 교회에 모여서 좋으나 싫으나 다 같이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저녁 예배 전까지 같이 시간 보내고 밥도 먹고 그랬는데 이젠 그렇게 다 같이 모일 수 없게 된 게 너무 슬펐다. 대학생 되고 고등학생 때가 그립던 그때 사진앨범을 정말 자주 들어가 봤던 것 같다. 그러다가 추억에 잠겨서 울적해지는 게 싫어서 스스로 사진앨범을 안 보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이후 대학교 생활에도 서서히 적응하며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특히 기독교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랑은 정말 매일같이 동방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친구들도 그렇고 동생들도 언니, 오빠들도 간사님도 내가 정말 애정했고 많이 좋아했다. 졸업해도 자주 만나고, 계속 만나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한 채 시간이 또 많이 흘러버렸다. 고등학교 친구들도, 대학 친구들도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기도 했고 이후 각자 취업준비다, 사회초년생이다 등등의 이유로 만나기 어려워졌다.


매일 함께하던 그때가 참 좋았는데. 먹고살기 바쁘고 형편이 여의치 않고 거리가 머니까 마음먹고 날 잡고 만나야 한다는 게 참 속상했다. 그리고 다 같이 만나기도 쉽지가 않았다.

대학생 때까지는 가끔 본가에 있는 추억상자에서 편지를 꺼내보곤 했다. 하지만 그 추억에 젖는 게 싫고, 편지를 나눈 그 마음은 진심이었는데. 그 안에 적힌 말도 진심이었는데 지금은 안 본 지 오래되고 원치 않게 멀어진 사이도 몇몇 있다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로는 편지를 받아도 읽고 버렸고, 일부로 보관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 인연과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게 싫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어린아이 시절을 지나면서 좀 더 인생을 알게 되고 성숙해진 건지 그냥 그 순간에 감사하고 순간을 즐기고 굳이 추억하게 될 무언가를 보관하지 말자는 생각을 서서히 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사진앨범을 보지 않게 됐듯, 편지도 잘 안 보고 보관만 해둔 지 몇 년이 흘렀는데 신혼집에 내 물건을 다 가져오게 되면서 드디어 추억상자들도 가져오게 되고, 열어보게 된 거였다.


편지가 정말 많았다. 감수성이 풍부하던 여고생들은 손 편지를 정말 자주 주고받았다. 그리고 교회에서 수련회 가면 편지지가 준비되어 있어서 수련회동안 고마웠던 사람에게 또는 평소에 고마웠던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줬기 때문에 교회 수련회에서 받은 편지들도 참 많았다. 열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열어봤다. 그 안에는 그때 나눴던 진심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립고, 보고 싶었다.


'편지를 괜히 열어봤나. 아닌가 이 김에 오랜만에 연락 한번 해볼까...'


그 수많은 인연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는 게 참 놀랍고 야속하기도 했다.


편지를 보관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부터,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살아가다 보면 계속해서 과거의 인연들이 쌓이는 게 당연한 거니까 과거를 그리워하지 말고 언젠가 과거가 될 현재를 즐기고 현재를 더 사랑하자!라는 다짐을 하며 살아왔는데 오랜만에, 정말 몇 년 만에 편지들을 꺼내보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하고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때 우리 진짜 재미있었는데, 그때 친했는데, 그때 선교 가서 너무 좋았는데 등등 여러 가지 추억들이 뒤섞여 떠올랐다.


분명 그 시기에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나 고민들이 많았을 텐데 이렇게 늘 미화되어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 걸 보니 인생은 참 희한하고 그게 또 신기한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과거를 그리워하고 지나온 인연들을 그리워하는 걸 여러 번 하면서 느끼고 배운 건, 과거를 추억할 수는 있지만,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냥 '아 그때 좋았지!' 이 정도 떠올릴 수는 있어도 우울해질 정도로 그 추억에 빠지지는 말자, 딱 1절만 하고 끊어내자!라는 것이다.


원래 지나온 시간,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그 시절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도 그렇고 대학시절도 그렇다. 지금 이 순간도 먼 훗날 나한테는 새로운 곳에 와서 신혼생활하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새롭게 적응해 나갔던 그런 추억이 되겠지. 그리고 지금은 크게 못 느껴도 나중에 이때를 떠올릴 때 '너무 좋았다~'라고 그리워할 부분이 분명 있을 거고, 이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 뻔하다! 무조건 할 거다! 내 남편도 젊고, 나도 젊고, 신혼이니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롭고 재미있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감사가 넘치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또 좋게 추억되겠어. 지금도 나한테 정말 최고의 순간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는 내 마음먹기에 따라 더 좋게, 더 행복하게, 더 감사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미화된 과거 그리워하는 건 1절만! 과거는 늘 더 좋아 보이는 법이니까. 그 속임수에 빠져서 현재 내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원래, 인생에서 만났던 친했던 모든 인연들과 평생 함께하는 건 불가능한 거다. 상황적인 이유로 멀어질 사람은 멀어지게 되어 있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함께 할 인연은 소수로 남게 되는 거고, 많은 사람들이 멀어지고 소수의 인연만 남았다고 슬퍼할 게 아니라 그런 인연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거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평생 함께할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인연들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고 무엇보다 소중한 내 남편이 옆에 있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내가 되면 좋겠다. 모든 걸 다 갖고 꽉 쥐고 살려고 하지 말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흘려보내야 하면 흘려보내며 그렇게 힘 빼고 살고 싶다. 과거는 과거일 뿐, 오늘을 즐기는 거야~! 오늘 하루 더 행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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