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Jul 16. 2022

스물여섯,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2)

학사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될지 안 될지 불확실할 때는 그냥 일단 해보는 게 답이다. 입시학원이나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을 때마다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 의지가 꺾인다기보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계획한 내 퇴사 시나리오가 점점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짜릿했다.


“대학교 전공도 지금 하시는 일도 디자인이나 미술 쪽이 아니어서 석사는 어려워요. 웬만하면 학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상담해주시는 분들의 공통적인 대답이었다. 석사의 경우, 이미 디자인 업계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벅찬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석사든 학사든 나에게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전혀 공부해보지 않은 분야를 도전하는 것이었고 기초부터 배워나갈 수 있는 학사과정이 오히려 좋았다. 우스갯소리로 가방끈이 길어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길이의 가방끈이 두 개가 생기는 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몇 주 동안 상담을 받은 후 나는 출퇴근길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짬짬이 내 퇴사 작전 생각뿐이었다. 회사에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이미 회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당연히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해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필요 이상으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나는 퇴사를 기점으로 내 주변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미대를 가볼까라고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당연히 한국이 아닌 해외 대학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또 어렸을 적부터 난 역마살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말레이시아에서 2년 정도 유학을 했었고 대학교 때는 베이징과 암스테르담에서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학부 때의 전공이 국제학이기 때문에 모든 커리큘럼은 영어였고 꽤 국제적인 환경에서 공부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해외 미대의 높은 등록금이 마음에 걸렸지만 우선 알아두기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시간이 될 때마다 미국 디자인 스쿨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난 것이 아니었지만, 디자인 스쿨의 화려한 웹사이트를 들어갈 때마다 혼자 배시시 웃었다. 이미 그 학교로부터 입학 축하 메일이 온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혼자 펼치기 시작했고,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상담을 받았던 미술학원 중 나는 제일 마음이 갔던 미술학원에 찾아가 간단한 테스트를 보았다. 좋아하는 작업물에 대한 리서치를 해오는 것이 사전 과제였는데 그 당시 내가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에 대한 리서치를 준비했다. 문제는 현장 테스트였다. 미술학원의 선생님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함께 수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걱정되었지만, 뭐 별 수 없었다, 일단 해보는 게 답이다.


선생님은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재료는 오일 파스텔과 종이였다. 나는 Dean과 백예린의 ‘넘어와'라는 곡을 선택했고, 음악 맞추어 정말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테스트라고 해서 긴장했었는데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테스트라고 하기엔 마음이 참 편안했다.


10분 뒤,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시고 한마디 건네셨다.


“좋은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여섯,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