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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Feb 18. 2023

소설, 알 수 없는 맛

니콜라이 고골 『코』

#니콜라이고골 #코 #호밀밭의파수꾼 #로쟈의러시아문학강의19세기 #작가는어떻게읽는가 #펭귄클래식코리아 #고골단편집 #조지손더스




무기력할 때가 있다.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할 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잡념이 사유의 자리를 차지할 때. 그럴 때 가볍게 소설 한 권 읽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에게 소설은 단 한 번도 가벼웠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등장인물의 동선과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입을 넘어 동일화되어 있는 나를 본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예로 들면, 홀든의 퇴학과 일탈은 이제 내 문제가 되고 슬픔과 외로움이 몰려올 때쯤 나는 홀든처럼 생각하고 홀든 말투로 사람을 대하게 된다. 비를 맞는 홀든은 더 이상 홀든이 아니라 독자인 나 자신이다. 



소설을 나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주인공이 받은 상처와 고민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일은 심히 괴롭다. 종종 악몽도 꾼다. 소설은 원래 그렇게 읽는 맛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쓴맛을 굳이 찾아 먹고 싶지는 않다. 물론 소설이 다 쓴맛만 있지는 않다. (흥미진진한) 단맛, (눈물 흘리며 읽는) 짠맛이 있고 '알 수 없는 맛'도 있다. 



니콜라이 고골이 쓴 단편 『코』는 맛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하고 따지고 들면 단순하지만은 않고 복잡, 난해하다. 『코』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8등관 코발료프는 하루아침에 코를 잃는다.(이상한 사건) '코'는 마부를 부리는 5등관이 되어 길거리를 돌아다닌다.(허구의 세계)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세계가 대응하는 방법) 정상적인 상황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감정이입할 이유도 없다. 소설에 숨은 비유와 상징을 찾을 수 없다. 



이현우는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 『코』를 이렇게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러시아어 제목으로 '코'는 철자를 거꾸로 하면 '꿈'이 되는데 만약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한다면 이 대사가 의미심장해진다.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고 너와는 관계가 없다'라는 코의 말은 5등관은 꿈도 꾸지 말고 8등관에 만족하라는 의미가 된다고 이현우는 설명한다. 결국 『코』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면서, 욕망을 이루기 위해 광기에 이르지 말고 지금에 만족하며 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는 듯하다.



한편 조지 손더스는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의 의미를 부분적으로는 인과성을 따라가면서 이해하며, 이야기의 힘은 그 인과성이 진실하다는, 즉 내적 논리가 견고하다는 우리의 감각에서 나온다." 그런데 『코』는 이 설명과 부합하지 않는 비논리적인 글이다. 그럼에도 고골의 『코』를 나쁜 글이라고 내쳐버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이 이야기의 이상한 논리가 오류의 결과라거나, 삐딱하고 안이하고 무작위적인 게 아니라 우주의 진짜 논리라고 느끼게 된다."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삶은 대체로 합리적이지만 이따금 부조리하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고골은 우리가 진짜이고 지속적이고 우리 운명을 통제한다고 느끼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어떤 편이 더 나은 해석인지 가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고골은 코가 크고 긴 편이며 그래서 콤플렉스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야심 많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토대로 해석해 보면 욕망을 다룬 이야기로 보는 편이 조금 더 선명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코』는 알 수 없는 맛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하게 입안을 감도는 이 맛, 고골의 단편 소설 『코』다.



*소설은 여러 맛이 있지만 어떤 맛이든 중독적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소설 한 권을 샀다. 마약이다.



#별책불혹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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