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늦은 밤 거리의 편의점들을 볼 때면 그것들이 마치 도시의 어항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푸른 계열의 조끼 같은 것을 입고 판매대에 물건을 채우거나 무심히 계산대 앞을 지키는 청춘들. 투명한 유리 벽 안에서 환한 불빛을 받으며 편의점 안을 유영하는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푸른 빛의 열대어처럼 보이곤 하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편의점 안을 유영하며 내 시간을 ‘최저’라는 이름이 붙은 돈과 맞바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도시가 잠든 시간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지를 목격했는데,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사춘기 소년이라도 되는 양 무엇이든 용서 받을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장 앞에 놓인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 던지며 싸우는 어른들은 흔했고, 자신이 지금 절벽 끝에 와있는 상황이라며 공짜로 음식들을 달라고 위협하는 남자도 있었다.
한번은 다짜고짜 담배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달라는 여자 손님이 있었는데, 그러다 불난다고 극구 말리자 겨우 그거 하나 못 해주냐며 한참을 앉아서 울다가 제풀에 지쳐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가버렸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앳된 얼굴을 하고선 술, 담배를 사러 오는 소년, 소녀들은 귀여울 뿐이었다. 그런 녀석들은 항상 신분증을 집에 두고 왔다고 하는데 우선 몇 년생이냐고 물은 뒤, 외워온 답을 말하면 바로 무슨 띠냐고 연이어 물으면 해결됐다. 그럼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 버리기 마련이었다.
검푸른 색의 잉크가 한 방울씩 풀어지기라도 하듯 어둠이 꽤나 짙어지면 손목에 흉터를 새긴 여자가 담배를 사러 들어오곤 했었다. 굵은 지렁이를 손목에 얹고 다니는 듯한 그 여러 개의 흉터들은 스스로를 해치려다 생긴 것이 분명해 보였었다. 그녀는 매번 다른 이름의 담배를 사가곤 했었는데, 하루는 신문들이 꼽혀 있는 가판대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년아 너도 세상이 다 네 맘 같지는 않지?”라고 낮은 음성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편의점 밖으로 나간 후 그곳을 보니 김연아가 점프 실수를 범해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녀가 다녀가고 시간이 지나 내 퇴근 시간이 가까워올 즈음엔 경마지를 사러 편의점에 들르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머리를 새까맣게 염색한 그는 매번 경마지를 사가는 것이 멋쩍은지 꼭 “오늘도 말밥주러 가려고”하는 말과 함께 내게 지폐를 건네곤 했었다.
내가 일하던 편의점은 여전히 속을 훤히 비춘 채로 금정역 출구 앞에 자리하고 있다. 종종 그 앞을 지나는 밤이면 유리 벽 너머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해보곤 한다. 어떤 날은 여자였다가 남자로 바뀌어 있고, 안경을 썼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는 맨 얼굴을 하고 있는 익명의 청춘들. 어린아이들이 손끝으로 어항을 톡톡 치듯, 밤의 사람들에게 시달려 피로하고 무심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 유리 벽 너머 물고기들.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은 그대로인 것이 없겠지만 내부 구조만은 놀랍도록 똑같아서 내가 서있던 자리에 이름 모를 그들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면 문득 아득한 시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손님이 드나들 때 맑은 소리를 내며 울리던 종소리, 매번 정시에 맞춰 배달되던 삼각김밥과 도시락들, 신문들, 홀로 라디오를 들으며 지새우던 밤들, 그런 것들도 그대로일까. 손목에 흉터를 새긴 그 여자도, 주말 아침마다 경마지를 사러 오던 할아버지도 여전히 편의점을 찾을까.
그 편의점 앞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밤엔 어항 같은 작은 공간에서라도 지나와버린 시간들과 풍경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음에 조금은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