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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룩스 Feb 07. 2023

금성의 시간


 단애의 끝에 호수가 있다. <파로호>의 첫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 강의실 뒷자리에서 소설을 필사하던 내가 떠오른다. 서걱서걱 볼펜 소리와 함께 노트에 한 자, 한 자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하던 소설들을 베껴 쓰는 일은 내게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던 나는 그렇게 하면 나중엔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설만 필사했던 것은 아니고 시도 적고, 수필도 적었지만 역시 소설이 제일 길어서 소설 필사를 마쳤을 때가 제일 뿌듯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손 글씨 연습하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 극단적으로 느린 속도의 독서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어 붓 글씨 연습이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필사를 꾸준히 해오다가 대학교 백일장에 응모한 적이 있었는데, 덜컥 수상을 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수상소감을 적어 달라는 요청에 ‘몰래 짝사랑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내 농담에 웃어준 기분’이라고 적어 냈었다. 정말 딱 그런 기분이었다. 희망이 생긴 기분.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이후에도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끝을 맺지 못해 중간에 포기한 글들이 하나, 둘 늘어갔는데 그 즈음엔 필사가 글을 잘 쓰기 위한 수련 같은 것이 아니라 도피처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무작정 필사노트를 한 권, 두 권 늘려가며 김승옥이나 오정희, 김애란, 김연수 등의 소설들을 게걸스레 베껴 적었었다.

 한참을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쓰던 와중에 소설가 김연수의 특별강연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소설 쓰기를 주제로 한 강연이었는데 강연이 끝나고는 작가에게 직접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였기에 그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았었다. 




 사인을 받기 전에 그에게 이름을 말해주며 나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그는 나와 눈을 한번 마주친 뒤 ‘글을 쓰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라고 적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 문장을 계속해서 읽었다. 그리고 글쓰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글쓰기를 놓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이후 ‘글을 쓰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거에요.’는 내겐 인생의 부적 같은 문장이 되었다.


 대학생 시절 나는 오정희의 <파로호>를 필사하면서 어렴풋이 글쓰기란 그의 첫 도입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단애의 끝에 호수가 있다. 산을 깎아낸 길 아래, 가파른 벼랑 끝의 호수는 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하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 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한 지점을 응시하는 일이라고. 온전히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야근을 시키지 않는 직장을 구해 저녁까지 일하고 밤엔 집에서 소설을 쓰는 삶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핑계일 뿐이지만 시간은 내 상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날 이끌었고, ‘글을 쓰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라는 문장 위엔 ‘먹고 살기 바쁘니까’,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같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빛을 잃어갔다. 어느새 나는 ‘더 좋은’ 사람이 아닌 ‘더 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었다. 

 그 문장 위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 주는 한 사람을 알게 되기 전엔 그랬었다. 그 사람은 내 글을 보며 이 문장이 좋았다고 짚어주거나, 다르게 바꿨으면 하는 부분도 ‘○○님이라면’으로 시작하는 말을 통해 용기를 준다. 글을 왜 계속 쓰지 않냐고, 계속 써보라는 따뜻한 채근도 내가 부적으로 삼은 문장을 빛나게 해준다.

 나는 올해 1월부터 자가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9명의 사람들과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글을 보듬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임이다. 매주 한편씩 글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글의 형식이 에세이이다 보니 속 깊은 곳의 이야기나 스스로를 드러내야 하는 글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나는 모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혼자서 쓴 글과 같이 쓴 글의 차이를 배워가는 중이다. 그릇의 담긴 물의 양도, 색도, 심지어 그릇의 모양까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모임의 리더인 세원님과는 이번이 세 번째로 함께 하는 시간인데, 이번에도 그간 쌓였던 ‘먼지’들을 가볍게 툭툭 털어내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같이 글을 쓰고 있는 9명의 ‘문우’들 역시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서울의 밤 하늘에서 별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수요일의 그 공간 안에서 만큼은 우리의 이야기와 따뜻한 감상들로 별무리를 이루고 있는 듯 느껴진다.


 행성들은 제각각 하루의 길이가 다르다. 화성은 25시간, 토성은 11시간, 해왕성은 17시간, 수성은 1408시간, 금성은 5832시간이 하루다. 특히 금성은 축을 따라 회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 보다 더 길다. 그래서 하루는 5832시간이고, 금성의 1년은 5390시간이 된다. 

 수요일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우리의 수요일은 금성의 시간을 빌려 오고 싶다. 혼자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 그 사람들과 1년 보다 긴 하루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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