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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Oct 30. 2022

육아휴직 중인 남편은 2박 3일간 여행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에는 휴가가 필요하다는 사실

아아~ 어제부로 남편은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무려 2박 3일이나! 제목과 이 문장만 보면 진짜 너무하다 싶은 남편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은 이러하다. 나는 서울 연수 일정이 잡혔다. 그게 바로 다음 주 금요일이다. 이 사실을 한 달 전쯤 남편에게 알렸더니 이왕 가는 김에 이틀 미리 올라가서 제대로 쉬고 놀다가 오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자비롭다니? 애셋 맘 양심상 찔려서 하루만 일찍 올라가서 놀다가 오겠다고 했는데 계속 이틀 전에 올라가라고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한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3일간 서울을 다녀오겠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도 '공평하게' 2박 3일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반대할 수가 없는 타이밍이었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셋째 날은 노는 게 아니라 연수를 듣는 건데....라는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순순히 알겠노라고 말하며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으면 잘 정해서 맘 편히 다녀오라고 했다.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지인들에게 하나둘 연락을 돌려보더니 결국 혼자 사는 친구가 있는 지역으로 갈 거라고 한다. 그 여행이 어제부터 시작되었고 오늘이 2일 차이다.


사실 이 여행을 허락하고 내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2박 3일 간 온전히 내가 아이 셋을 본 적은 없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감당해낼 자신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작년에는 아침 등원 때 친정아버지가 오셔서 도와주었고 저녁에는 퇴근하는 남편과 함께 육아를 했었고 올해는 내가 주로 일을 했으니 더더욱 감이 안 왔다. 그리고 셋을 오롯이 보는 동안 몸과 마음이 피로해서 아이들에게 쉽사리 화라도 내면 어떡하지? 하는 나 자신에 대한 걱정도 들고 오랜만에 하는 '나 홀로' 아침 등원 준비는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00(제 이름)아,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남기고 발걸음 가벼웁게 시외버스터미널로 떠났다.



남편이 여행을 떠나고 이틀 차인 오늘까지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딱 이거였다. 


그래, 육아도 휴가가 필요하다! 


직장인들에게는 휴가가 있고 학교에는 방학이 있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동안 지치고 힘드니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몸과 마음에 쉼을 가지라고 이런 날들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는 실상 그렇지 못하다. 물론 아이들이 기관 생활을 한다면 그 기관에 가 있는 동안은 그나마 쉬는 것이지 않느냐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기관에 가 있는 동안에는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에게 먹일 반찬거리와 간식 메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고. 집 청결을 위해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도 해야 한다. 빨래 돌리고 널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 오프라인&온라인으로 부지런히 장도 봐야 한다. 아이가 없다면 그 시간들을 오롯이 나를 위해 그리고 철저한 시간 계획하에 조절해서 쓸 수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기관에 가 있는 시간도 온전한 휴식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네가 오후 세시 반에 온다면 난 두시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할 거야.


아이가 세시 반, 네시에 하원을 한다면 하원 담당자는 두시쯤부터는 뭔가 마음이 조급해지고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상태가 된다. 더구나 우리는 막둥이를 가정보육하는터라 둘을 유치원에 보내도 아이 하나는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더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쓰인다.


주말은 또 어떻고?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에게 바짝 붙어서 언제든 내 두 곁을 아이들에게 내어줘야 한다. 삼시세끼 차리면서 함께 놀이의 시간도 보내야 한다. 이런 육아라는 굴레 속에서 조금이나마 숨 쉴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온. 전. 한. 휴가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다. 이전에 말한 자유시간으로도 뭔가 한참 부족한 때가 도래하는 것이다. 사실 아이가 둘일 때까지는 남편과 나 각자 친구들과 1박 2일 정도의 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다. 하지만 셋을 낳고서 이렇게 각오하고 2박 3일을 육아휴가의 의미로 공평하게 보낸 적은 처음이다.


지금 나는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내게도 다음 주에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고(두근두근). 두 번째로는 남편이 이 시간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알차게 보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넉넉해질 그를 잘 알기 때문에 이 시간을 평탄하게 보낼 수 있다.


감성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아이 셋 육아의 굴레 속에서 종종걸음 치며 바삐 살아오다 보니 그간 하늘 쳐다볼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여행 중인 남편이 내게 카톡으로 하늘이 예쁘다는 여유 넘치는 멘트를 보내왔다. 3일을 꽉 채우고 내일 밤에 돌아오는 남편은 또다시 힘을 내어 육아를 하겠지. 나도 다음 주에 서울을 가면 흔쾌히 보내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커지고 또 아이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많이 설렌다.(진심)


이런 시간을 앞으로도 꾸준히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떠나든 홀로 떠나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여행을 한다면 그 이후의 시간 가운데에는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내 마음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세어보니 벌써 아빠 육아가 5개월이 지났다.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확실히 2017년에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했던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남편과 나 각자 달라진 역할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아등바등 이었다면 지금은 아이 셋을 기르며 육아휴직을 하는 남편과 일하는 나에게서 뭔지 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경력직의 여유랄까? 확실히 두 명 다 조금은 업그레이드되었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이제 7개월이 남았다. 각자 누리는 2박 3일의 휴가가 끝나면 공동육아를 하다가 다시 나는 일하는 엄마로 그리고 남편은 육아하는 아빠로 살아가게 되겠지. 하반기에는 각자 맡은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진 © veerasantinithi,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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