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주간에 구청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아이 셋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 우리 가족을 본 어르신들은 꼭 하는 말씀이 있다.
아이고~ 애국자다~
아이고 상 줘야 한다~
아래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이렇게 사투리 팍팍 담긴 정감 있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애국하려고 아이를 셋 낳은 것도 아니요, 그 어떤 상을 받으려고 아이를 셋 낳은 것도 아니라는 거다. 그저 남편과 내가 좋아서 낳은 아이들이 셋인 것이다.
남편은 청년 때부터 막연하게 딸이 셋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고 나는 삼 남매 중 막내라서 인지 그냥 세 명이 무언가 삼각형의 세 꼭짓점처럼 균형 있고 안정감 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계획 하에 셋을 낳은 거였다.
우리가 좋아서 낳았고 낳았기에 책임을 지고자 일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부족한 엄마와 아빠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눈물짓고 또다시 새로운 다짐을 하며 하루하루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8월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남편, 막둥이, 그리고 방학이었던 나는 잠시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가 있었다. 갑자기 남편 폰에 진동이 울리기에 동시에 폰 화면을 봤는데 우리가 사는 구의 구청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구청에서 전화가 오는 건 흔치 않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얼른 받아보라고 재촉했다.
한참을 통화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궁금증이 몰려왔지만 잠자코 끊기만을 기다렸다. 왜 전화가 온 거냐고 물어보니
우리한테 무슨 표창장을 준다네.
자세한 안내는 시간이 더 필요해서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다시 전화를 달래.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람과 궁금증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결국은 내가 전화를 하기로 하고 장소를 옮겨서 조용한 곳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결론은 9월 첫 주인 양성평등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에게 표창장을 주고 싶다는 거였다. 담당자님이 우리 가정을 추천하고 싶은데 본인의 동의가 필요해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나는 두말 않고 주시면 감사히 받겠다는 답변을 건넸다. 여러 안내사항에 대해 듣다가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나는 기어코 물었다.
저희가 이걸 어떻게 받게 되는 거예요?
선발 기준이 궁금해요.
했더니 우리 구에서 실시하는 "함께 육아 프로젝트 가족애 발견" 참여 가정 중에서 뽑았다는 거다. 선발기준이 간단하면서도 의외라서 좀 놀랐다.
나는 그저 동네에서 길을 걷다가 육아 프로그램 신청 안내 플래카드가 커다랗게 붙어있길래 그걸 보고 신청했었다. 다시금 육아휴직을 시작하는 남편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고 육아에도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선발된 덕에 3개월간 놀이 키트도 받았고 미션을 통해 동네의 좋은 나들이 장소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즐겁게 참여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 표창장을 준다니????????
어안이 벙벙. 지난여름은 아주 평범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이 표창장 소식 덕에 조금은 설렘을 안고 시간들을 보냈다. '상을 받는다는 설렘'.
극도의 성취 지향적, 결과 중심의 삶을 살았던 나는 '상'이라는 걸 참 좋아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이제는 받을 일도 잘 없거니와 상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주신다고 하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사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연초에 괜스레 상을 받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구에서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에도 참여 중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우리가 목표한 삶과는 조금 거리가 느껴지는 프로그램이라 더 이상 그 프로그램과 상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그런 중에 생각지도 못한 루트를 통해서 상을 받게 된다니!
내가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우리 가족은 구청에 가서 구청장님께 직접 상을 받지는 못했다. 무지 아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편으로 보내주신다는 상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격리 중 남편에게 매일 물었다. 상이 왔냐고.)
담당자님께 우리 남편이 올해 육아 휴직했노라고 깨알같이 추천서에 쓰실 말씀을 보태기도 했다. 작은 설렘을 안고 기다렸던 표창장을 받고 보니 마음이 좀 뭉클했다. 누구에게 상 받으려고, 칭찬받으려고 아이를 낳아서 기른 건 아니었는데, 아직도 우린 여전히 부모로서 미완성인데 그래도 잘하고 있노라고 애쓰는걸 아노라고 다독여주는 느낌의 표창장이었다.
하루하루 피로에 지쳐 머리를 대고 눕기만 하면 아이들과 같이 잠드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 표창장 덕에 올 한 해도 헛되이 보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에서 뿌듯함이 차올랐다.
우리 부부가 동지애를 가지고 더 열심히 살아갈 계기가 된 표창장 수여 사건. 잊지 못할 날이다. 상을 받은 것도. 2년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에 걸려서 직접 받지 못한 것도. 하지만 우리 가족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에피소드가 또 하나 생겨서 감사하다.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영유아 3명을 온전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길러내기 위해 오늘도 우리 부부의 육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 © nate_dumlao,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