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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Oct 30. 2022

아빠는 육아하고 엄마는 일하는 우리 집은 순항 중


요즘 우리 남편이 푹~ 빠진 드립 커피의 아이템들이다. 예전부터 커피를 참 좋아하던 남편이었다. 집에 있는 네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 돌체 라테(연유 라테), 카페라테, 아메리카노를 참 맛있게도 내려주던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남편 생일 2주 전쯤부터 갑자기 커피 관련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마구마구 빌리기 시작했다. 항상 뭐 하나 빠지기 시작하면 책으로 영상으로 깊이 있게 온몸을 푹 적시고 나면 그제야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는 남편의 성향이 이번에도 드러났다.


커피 관련 인문학 책, 만화책, 드라마, 유튜브 영상 등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란 루트는 다 찾아보고  공부하더니 충분히 공부했다 싶었던지 이제 남편은 드립 커피 관련 아이템을 하나씩 하나씩 신중하게 사모으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금으로 받은 10만 원을 온전히 여기에 다 쓰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게 참 재밌다. 나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 신기하기도 하다. 휴직을 하면서 온전히 나만의 취미를 갖는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지켜보며 대리 만족하기도 한다.


첫 커피는 너무 써서 커피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도저히 다 마시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맛의 커피를 내려준다. 남편은 커피를 갈고 주전자로 휘휘 물을 내리면서 혼자서 열심히 중얼중얼거린다. 입자가 너무 크네, 타이머가 어쩌고 저쩌고, 산미가 많네 등등 그러면서 끊임없이 셀프 피드백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에는 좀 더 잘 내릴 수 있겠다고 말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어쩌면 우리 부부의 육아도 이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셋이지만 여전히 부모로서 부족한 것 투성이어서 끊임없이 양육방식을, 하루 일과를, 훈육방법을 고쳐가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나가고 있다. 커피를 갈고 내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커피맛이 조금 더 나아지고 있듯이 우리의 육아도 여전히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은 일상에 여유를 가지게 되고 더 나은 육아의 방법을 고민하며 아이에게 긍정의 미소를 내비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빠의 애셋 육아휴직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어느덧 우리 집은 역할 교환을 한지 만 2개월이 지났다. 그간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있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동안 지난 두 달을 다시 돌아보니 나름 순항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고 한다. 작년에는 일을 하면서도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해야 해서 육체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어했는데 올해는 직장일은 없고 육아와 집안일만하니 ‘절대적으로’ 해야 할 일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이전보다는 편하다나. 물론 살림과 육아가 편하기만 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육아와 일을 병행해본 사람이라면 분명 알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며 만족한다. 3년간 내리 육아휴직을 하며 극히 제한된 사람들과 대화를 하던 내가 이제는 직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변 선생님들과 업무, 수업, 학생, 육아, 책 등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니 내 안에 꼭꼭 숨어있던 생동감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교과서적 문구를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아빠 육아휴직제도로 인해 수입도 아주 조금 늘어서 아이들에게 맛난 과일 하나 더, 좋아하는 간식 하나 더 사서 입에 넣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도 사실 만족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올해 역할 교환을 한 건 참 잘한 일이다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집안의 어마어마했던 쓰레기를 전부 분리수거한 남편에게 오늘 저녁에는 자유시간을 선사하고자 한다. 다녀오시라우? 이것은 주말에 많이 힘들 아이 셋 육아를 위한 당근이라오.


사진 © mmwoodso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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