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유시간을 절실하게 사수하는 엄마, 아빠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요즘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이가 셋인 가정이지만 육아라는 굴레 속에서만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 ‘나를 찾는 시간’을 갖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엄마,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그 진부한 말이 실제로도 참임을 믿고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아이가 배제되어선 안된다. 엄마, 아빠'만' 행복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행복해서 그 행복이 아이들에게까지 긍정적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역할 교환을 한 후 우리 부부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1. 버스를 이용한 출퇴근
나는 자차 운전의 기쁨도 출근한 지 2주가 되니 시들 시들해졌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속도감을 즐기며 운전하는 게 하루의 힐링 포인트였는데 이제는 그 출퇴근길도 지겨워졌다.(화장실 들어올 때랑 나갈 때 다르다더니) 기름값이 많이 올라서 비용이 부담될뿐더러 운전하면서 팟캐스트, 유튜브 강의를 들어왔는데 온전히 집중해서 듣는 게 아니다 보니 양쪽 귀를 빠르게 관통해서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지난주 아침에 즉흥적으로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보았다. 피곤할 때는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잘 수도 있고 원한다면 집중해서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때로는 이렇게 핸드폰으로 글을 쓸 수도 있으니 참말로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른 아침부터 확보한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다.
2. 자유시간을 누리기
남편은 자신만의 시간을 잃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처음에는 이런 남편의 변화가 조금 불편했다. 육아를 함께 해야 할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 육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부성애가 부족한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마인 나는 아직,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남편 그만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치로 느껴졌다. 하지만 남편이 기어코 한 번 자유시간을 가지고 돌아오면 나도 손해를 보기가 싫어 똑같이 한 번 나가는 식으로 번갈아가며 자유시간을 누렸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 시간들이 주는 장점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렇게 자신만의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카페를 가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동안 혼자서라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지도에 찍어두고 언제 갈 수 있을지 기대와 설렘이 생기기도 했다. 1%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에 화들짝 놀라도 급속 충전을 하고 나면 금세 안심을 하게 되는 핸드폰처럼 나도 육아로, 직장일로 완전히 지쳐갈 때쯔음 이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고 나면 당분간은 일상 에너지 방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이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남편과 나는 각자 자유시간을 누리기 위해 종종 홀홀 단신으로 밖으로 나간다.
지난주 중 하루는 나는 퇴근 후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집 근처에 있는 대학가에 갔다. 필요한 옷도 사고 맛난 순두부찌개도 혼자 사 먹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하며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는데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만큼은 세상 날아갈 듯 좋았다. 미리 약속해둔 탓에 남편은 다음 날 저녁거리로 소고기 카레까지 나와 아이들을 위해 야무지게 만들어두고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룰루랄라 집을 나갔다. 카페에 가서 그간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고 왔다고 한다. 이렇게 애 셋을 낳아 기르는 동안 조금씩 육아 레벨업을 한 결과 이제는 세명을 혼자 케어해도 어찌어찌 볼 수는 있는 상태(?)까지는 되었다.
3. 취미에 몰두하기
남편은 요즘 커피에 빠졌다. 뭐하나 빠지면 아주 뿌리를 뽑는 성향의 남편. 커피 관련 책 읽고, 커피 관련 유튜브 보고, 그렇게 커피 공부에 며칠간 열을 올리더니 이틀 전에는 결국 드립 관련 아이템 구매를 완료했다. 막둥이를 데리고 원두가 맛나다는 커피집을 찾아가서 맛이 좋은 원두를 직접 사서 오기도 한다.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취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육아가 슬퍼지지 않기 위해,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실어서 꾸역꾸역 하루를 보내지 않기 위해 의지적으로 몰두할 대상을 찾고 이를 통해 나의 성장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육아휴직 가운데 쉼표로 주어지는 시간을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려는 그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혹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육아와 직장생활 가운데 혼자만의 시간을 가끔이라도 가지시는지 정말 궁금하다. 혼자서 꼼수로 내는 시간 말고 아내와 남편 사이 넉넉한 합의로 인해 대놓고 가지는 '나만의 시간' 말이다. 내 안의 빈 부분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일상 속 자유시간은 참 좋다. 아이를 배우자에게 맡겨두고 나가는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을 알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메모지에 적어두고 도장깨기 하듯 그 일을 하는 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사수해보는 건 어떨지 감히 제안해본다.
육아로 인해 제한된 것이 많은 우리 남편의 갖은 노력을 보며 한편으론 짠하기도 하다. 가정보육을 하는 막둥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도 잠시라도 여유를 가지고 싶어 빨래가 늘어져있는 베란다 한쪽 틈에서 커피를 마시는 남편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고 싶다. 나는 점점 우울의 늪에 빠져갔었지만 나와는 달리 평범한 육아의 연속에서도 여유와 희망을 찾는 남편이 대단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는 언젠가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허우적거리면서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육아 스트레스로 생겨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관망하는 여유를 가진 현명한 부모가 될 수 있겠지.
어제는 분주하게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다가 눈치 없이 늑장 부리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는 남편의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 남편도 애셋을 보면서 등원 준비하는 그 시간이 이제는 울컥할 정도로 힘든 일로 다가오나 보다. 그를 이해하는 나를 돌아보니 새삼스럽지만 이렇게 육아 동지가 되어가는 건가 싶다. 우스운 건 애가 셋이나 되고 나서야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절대 다둥이의 삶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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