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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Oct 29. 2022

난 오빠가 진짜 식단표를 만들 줄은 몰랐어

남편의 살림 능력치가 점점 향상되고 있다.

어느덧 복직한 지 3주가 다 되었습니다. 이번 주부터 4주 차가 시작되네요. 시간 참 빨라요. 하지만 저는 업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제 자리 전화기 벨소리가 울려요. 다른 사람의 업무를 돕는 성격이 강한 자리라 그런지 도움 요청이 계속 이어져요. 다만 아이가 셋이라 업무분장에서 많은 분들의 배려 덕에 비담임을 맡게 된 게 신의 한수지요. 그나마 일을 해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일한 지 3주가 되었다는 건 곧 저희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지도 3주가 되었다는 겁니다. 일단 저희 남편 아주 놀랍게도 식단을 짜는 남자로 변모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남편의 성격에 대해 먼저 간략히 알려드리자면


1. 매우 꼼꼼함.

2. 정리를 아내인 나보다 더 잘함. 매우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인 시어머니로부터 유년시절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결과 정리,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 청소에 특화된 인물

3. 요리를 잘하려고 애쓰는 분


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냥 전업주부가 딱인 성격 아냐? 하시겠죠. 네, 제가 쓰고도 진짜 그래 보이네요. 근데요 살림??? 진짜 저보다 잘해요.


말 그만하고 사진 투척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남편이 복직을 앞두고 2월부터 식단을 같이 짜자고 했었는데 저 혼자 깜빡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2주 차에 갑자기 혼자 식단표를 만들더라고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영양소 구성을 감안하며 식단을 짜는데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남편이 식단표를 짠다는 자체가 괜스레 낯설고 신기했어요.


제가 평소에 식단표를 짤 때도 있었지만 이건 주로 냉털 시기에만 하는 행동이었어요. 냉장고 속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간단하게 적어서 냉장고 문에 붙여두고 리스트를 살펴보며 하나씩 해 먹었거든요. 주 단위 식단표도 몇 번 짜 보긴 했습니다만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남편은 2주 동안 일요일 아침이면 식단표를 짭니다. 일반적으로 식단표를 짰을 때의 장점은 너무 잘 아실 테니 저는 저희 부부처럼 한 명은 일하고 한 명은 육아와 살림을 할 때의 식단표가 주는 이로움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의 장점은



1. 제가 미리 요리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잘하려고 하긴 하지만 디테일한 요리 부분에선 아무래도 저보다 어려움이 많아요. 전날이나 당일 새벽에 식단표를 보고 재료 준비나 조리과정에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제가 미리 알려줍니다.


2. 역할 교환이 빠릅니다.


누가 재료를 구입하든, 누가 재료를 다듬고 만들든 사전에 메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황 대처가 빠릅니다. 하루는 퇴근길에 집 근처 마트에서 저녁 준비에 필요한 참치캔을 제가 사갔어요. 남편은 이미 다른 반찬을 다 세팅해놓고 있더라고요. “오늘 뭐 먹지”와 같은 대화가 많이 줄었어요. 이미 정해진 메뉴를 오로지 어떻게 하면 빨리, 편하게, 맛있게 만들지의 문제만 남았기에 식사 준비 과정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남편은 오프라인 식재료 구입을 담당하고 저는 쓱, 홈플러스, 마켓 컬리, 지마켓 등을 통한 온라인 식재료 구입을 담당해요.





남편이 육아휴직을 처음 했던 2017년에는 이렇게 식단표를 짜지 않았어요. 그때는 저도 임신으로 하루하루가 피곤했고 남편은 처음으로 한 육아휴직에다 여러모로 서툴러서 오로지 첫째를 보살피는데만 온 신경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그때 남편은 요리가 서툴러서 돌보는 첫째에게 두세 가지 정도의 한 그릇 밥 메뉴로 무한 돌려막기를 했어요.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차려진 한 그릇 밥을 보면서) 아빠 이거 싫어 싫어!!!" 했던 첫째의 멘트에 저희 부부가 너무 놀라서 한참을 깔깔거렸던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얼마나 먹기 싫었으면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금방 이런 표현을 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셋이라 일단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무슨 일을 하던 효율성이 포커스 1위가 되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식단표를 짜는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네요. 남편이 또 식단표를 짤지 조용히 지켜봐야겠습니다.


남편이 아내인 나와 살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같이 집안일을 했으면 좋겠다 싶으면 같이 식단표를 짜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식단표를 짤 테니 여기 와서 봐봐~하는 건 별로 유인가가 없을 테니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번 주에 먹고 싶은 음식, 간식을 말해봐(실제로 저희 부부가 서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묻는 것)하며 가족을 부르면 식탁으로 쪼르르 달려올 거예요. 가족이 같이 식단을 짠 뒤 식재료를 구입하고 준비하면 공동 살림, 공동육아가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남은 휴일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셔요.


올해 상반기부터 써왔던 '남편의 육아휴직'을 주제로 한 저의 글을 하나씩 하나씩 편집해서 브런치에 올리고 있습니다. :D

사진: © dbreen,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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