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종종 다툼을 했다. 주중에 아이들과 집을 중심으로 맴돌며 생활했던 나는 주말만 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단 함께 육아를 해줄 남편이 있고 운전이 미숙한 나와 달리 운전에 능숙한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든 나들이를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남편이 퇴근한 금요일 저녁부터 "내일은 어디 가지? 내일은 어디 갈까?"를 물으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어째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하도 답답해서 내가 몇 가지 안을 내면 1안이 좋다, 2안이 좋다 등 어떤 답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내일이 되면 생각해보자는 둥 속 답답한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는다. 결국 토요일이 되면 오전부터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금요일부터 어디를 갈 거냐고 그렇게 물어댔다. 엄마인 나는 미리 장소를 정해야 마음의 준비도 하고 시간계획도 세워 외출 준비를 빠르게 할 텐데 왜 주말 계획을 세우려는 의지가 없냐고 다그치는 패턴이었다.
이렇게 다투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며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사실 나는 가족 나들이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런데 엄마라는 자리에서 오는 일종의 책임감으로 인해 그리고 나의 유년시절의 결핍을 내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기 위해
'주말에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잘못된 거야, 아이들을 위해 나들이를 하며 알차게 보내야지. 평소에 가지 못했던 곳을 차를 타고 가야 해, 아이들에게는 무언가 볼거리, 놀거리를 제공해줘야 해.'
이런 생각이 아주 강했던 거였다. 반면 남편은 주중의 고된 일과 육아로 인해 지친 상태로 금요일 저녁을 맞이했다. 내일 하루는 좀 쉬고 싶은데 아내는 자꾸 어디를 갈 거냐고 묻지 출퇴근길 숱한 교통체증의 한가운데 있다가 이제야 주말을 맞이해서 좀 쉬고 싶은데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재차 물으니 해줄 만한 대답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어제는 역할 교환을 하고 맞이한 첫 주말이었다. 상대적으로 작년에 일하던 남편에 비해 나는 업무강도가 적은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주부로 지내던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심적으로 부담이 좀 컸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일도 적당히가 아니라 스마트하게 잘 해내고 싶고 지각은 하면 안 되고 등등 학교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맡은 역할을 무리 없이 잘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토요일 아침도 평소 주말 때보다는 일찍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몸이 둔하게 움직인다. 3일간의 출근만으로도 몸에 피로가 쌓인 것이다. 아침부터 자꾸 눕고 싶고 쉬고 싶었다.
막둥이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서는 내가 먼저 잠들었다. 그리고 낮잠을 잔 막둥이 보다 내가 더 늦게 일어났다. 3일의 출근만으로도 내 몸은 피로했고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배려심 많은 남편은 날 육아에 소환시키지 않고 회복의 시간을 갖는걸 너그러이 허락해줬다. 나는 뒤늦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랬다. 남편은 어딜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정말 어디를 갈 '여력'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제야 온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하는 게 아니라 고갈된 체력과 마음을 채울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모순적이게도 첫 주말을 맞이한 나는 이전처럼 '어디 갈래? 차 타고 어디 갈까?'라는 질문은 입 밖으로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매우 피로했으므로. 대신 남편이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에 있는 내가 졸업한 대학교를 산책하러 나가자고 한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안 든다. 그저 부부인 우리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에 가서 그 와중에도 아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적당히 허용해주는 정도로 충분했다. 아이들이 직접 고른 간식거리와 맛난 토스트를 먹으며 보낸 오후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전에 낮잠을 자는 동안 회복의 시간을 줘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는 저녁을 먹고 나서 외출을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 제안을 듣고 나서 셋을 맡기고 나가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좀 갑갑했다며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외출을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벗어나 누리는 각자의 쉼의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최소화한 채 지내는 터라 시간을 조각조각 내서 남편의 시간, 나의 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세 조각으로 나눠 가지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모습도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부모인 우리의 에너지가 채워져야 아이들에게도 그 에너지를 나눌 넉넉한 힘이 생기니까 말이다.
꽤 괜찮은 3월의 첫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