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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Oct 26. 2022

가족여행, 그리고 우리 부부의 역지사지

아이들이 아닌 남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기로 했다.

아이들이 이제 여행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내 마음 상태가 온전치 못해, 그리고 막둥이가 너무 어리다는 핑계로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던 나와 남편은 약 일 년간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왔다.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경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첫째와 둘째는 여행이라는 걸 처음 다녀온 아이들 마냥 무척이나 좋아했다. 갖가지 반찬과 함께 차려진 맛난 식당밥, 재미있게 뛰어놀았던 놀이터에 대한 언급은 하나 없고 그저 숙소가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잤던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여행의 큰 기쁨이었던 듯하다. 경주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숙소’에 다시 가고 싶다(=여행을 가고 싶다)는 표현을 하던 아이들.


마침 나의 개학을 앞두고 남편의 지인을 통해 광안리에서의 숙박 제안을 받았다. 아이들의 요청도 있었기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고 그 지인 덕에 좋은 숙소를 배정받아 광안대교, 하늘과 맞닿은 푸른 바다가 너무도 잘 보이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어쩌면 개학을 앞둔 남편과 나는 우리의 역할 교환과 앞날에 대한 걱정을 이 여행을 계기 삼아 기대감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숙소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창문 너머의 바다를 보고 나니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곳.



내가 막둥이와 함께 낮잠을 자는 사이 남편은 딸 둘과 함께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남편이 짧게 남겨둔 카톡 메시지를 읽고 나서 창 밖을 바라보니 아이들과 함께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다정한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자주 그랬다. 남편은 언제나 나의 몸과 마음의 휴식시간을 지켜주고 싶어 했고 그 시간을 평온하게 보내길 원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기꺼이 밖으로 나가주던 그런 사람이다.


새로운 업무를 맡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는 나, 그리고 일을 쉬는 동안 육아를 멋지게 전담하며 틈틈이 시간이 나면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싶은 남편. 우리 두 명만 잘하면 된다. 아이들은 우리의 상황과 마음 상태에 따라 자연히 잘 따라 올터이니.


나는 일하고 남편이 육아 휴직하는 게 두 번째라 그런지 이전과는 사뭇 내 마음이 다르다. 그때는 내가 둘째를 품은 몸으로 출근하던 때라 내 건강이 그리고 내 마음이 더 중요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첫째를 집에서 오롯이 돌보면서 임산부까지 신경 써야 했던 남편의 어려운 상황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은 늘 외로워했다.


아이를 돌보는 낮에는 그저 아이에게만 메인 몸이어서 그리고 육아의 고달픔을 나눌 동지가 하나 없어서 힘들어했다. 그래서 남편은 나의 퇴근을 눈 빠지게 기다렸지만 정작 아내인 나는 집에 오자마자 임산부라는 이름하에 피곤함이 몰려와서 항상 저녁 전에 낮잠을 잤다. 와이프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정작 그 와이프는 본인 몸 챙기기도 버거워 보이니 남편은 본인 상황에 대한 하소연을 할 새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남편이 참 짠하다는 생각이 든다.(이게 바로 글쓰기의 힘일까?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당시 이런 나로 인해 남편의 마음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


2019년 우리의 역할 교환 첫 해에 나는 남편에게 아이와의 일상을 글로 남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육아일기를 매일 같이 꾸준하게 올렸다. 나와 내 지인들은 남편의 일상과 육아에 대한 아빠의 생각을 담은 글을 보는 게 재밌었고 참 흥미로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이 올린 사진과 정성을 들여 쓴 글을 읽는 게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남편은 솔직하게 말해줬다. 그 육아일기를 쓰는 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였다고.


적잖이 놀랐다. 나는 기록의 힘을 믿었기에 그저 남편이 일상을 흘러가듯 보내기보다는 글로 남기며 우리가 함께 육아와 일상을 디테일하게 공유하는 매개체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철저히 내 위주의 생각이었다. 육아의 주체인 남편을 세워주고 존중해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의 가사를 분담하진 못할지라도 집에서 머물며 상한 마음이라도 보듬어 주기 위해 힘을 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참 소홀했던 것이다.


이런 반성과 함께 그 이후 3년간 내리 육아휴직을 하며 우울의 늪으로 빠졌던 내 마음 상태를 잘 떠올리며 이제는 그의 외로움, 그리고 육아를 홀로 감당하 것에서 오는 어려움과 육아휴직이 주는 그 어떤 공허함 그 사이를 이해하고 촘촘하게 함께 채워가도록 힘써야겠다.


교과서에만 나오던 단어를 제대로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때가 왔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수업시간에 그리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숱하게 이야기했던 말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해서 일을 했던 3년간 남편도 참 많이 고생했다. 일을 하면서 가정일에도 충실했던 남편의 고달팠던 그 입장을 이해하는 시간을 나도 앞으로 가져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또 하나의 큰 산을 둘이 함께 넘고 나면 이내 숨은 헐떡거릴지라도 마음속에는 큰 뿌듯함이 생겨나겠지? 과연? 1년 뒤 우리 부부의 표정이 어떨지 걱정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생긴다. 경력직의 여유가 바로 이런 걸까.


우리 잘 해낼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겠지?


올해 상반기부터 써왔던 '남편의 육아휴직'을 주제로 한 저의 글을 하나씩 하나씩 편집해서 브런치에 올리고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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