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년 무사할 수 있을까?
오는 3월부터 나는 복직을 하고 남편은 육아휴직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다니는 직장의 특성상 복직자는 2월에 업무분장, 그리고 전임자와의 인수인계로 인해 이틀 정도 출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역할 교환 예행연습을 이틀간 하게 된 셈이다.
첫째 날 아침 나는 출근을 하고 남편은 두 아이의 등원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즈음 남편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아침에 둘째가 열이 나서 등원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날 남편은 첫째를 겨우 유치원에 보냈고 나머지 아이 둘을 집에서 돌보았다.
둘째 날에도 역시 나는 출근해서 직장에 있었는데 갑자기 유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첫째 반에서 코로나에 확진된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얼른 하원을 시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병원에 가서 빠르게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한다. 두 아이를 보고 있던 남편은 결국 이날 점심때부터 아이 셋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나는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아주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고 이틀간 전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주 디테일한 인수인계를 받았다. 에이포 용지 서너 장에 달하는 분량의 서류를 준비해오셔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이렇게 당황스러운 이틀을 보내고 나니 우리 둘은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먼저 남편은 정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틀간 두 명, 세명의 아이들을 연달아 가정 보육하고 나니 심신이 지쳤던 것이다. 남편은
아침에 아이들 등원을 준비하는 건 좀 힘들겠지만 유치원에 가고 나면 (이제 막 돌이 지난) 막둥이와 둘이서 좀 쉬면서 시간을 보내며 되겠지.
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이틀에 걸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툭툭 튀어나오니 정신을 못 차리겠더란다. 항상 직장에서 전화기 너머로 나를 통해 육아의 갖은 변수를 전해 듣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적잖이 놀란 듯했다. 이틀간의 세 육아와 집 정리로 너무 피곤하다고 말하던 그는 그날 밤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에 들었다.
나는 사실 남편을 위로할 새도 없이 내 나름대로도 심신이 피곤했던 이틀이었다. 출근길은 룰루랄라 신나기만 했다. 3년 간의 연속적인 재택근무(집안일과 육아)를 끝내고 나도 이제 집을 떠나가야 할 직장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하지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점점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왔다.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실상을 파악할수록 이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완벽하고 똑 부러지게 일을 해내고 싶은 기대치가 높은 내가 과연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인 만큼 원격수업을 갑자기 해야 한다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학교 일에 대한 걱정이 출근을 한 뒤로부터는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일도 일인 데다가 내가 직장에 가고 나면 육아와 관련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남편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이틀간 아이들 가정보육을 하고도 저렇게 지쳐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면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지 나까지 지레 겁을 먹게 된 것이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겪으면서 변수의 가능성은 더욱 많아졌다. 4년 전 우리 부부의 역할 교환 때가 생각나면서 역시 나는 올해 남편의 정서적 건강을 위해서도 애써야 하는 건가. 내게 주어진 일만으로도 힘들고 고될 것 같은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막막했다.
2월 중 역할 교환을 한 이틀은 정말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남편은 세 아이 육아와 집안일로, 나는 직장일로 인한 에너지 고갈이 심했다. 그렇지만 이틀을 통해 우리의 역할 교환 계획을 물릴 수는 없지 않은가?
각자의 직장에 복직과 휴직에 대한 의사를 내비쳤고 이미 새 학기를 시작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니 이제는 이 극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각자 최선을 다해 가정 내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한 적응 기간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나보다 업무 경험이 많은 남편에게 직장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되고 남편도 육아와 집안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겪었던 경험을 되살려 도움을 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만 인수인계를 주고받을게 아니라 부부인 우리 둘 사이에도 인수인계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은 10일 간 우리 둘은 가정 내 집안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등원과 하원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의 노하우와 남편의 의견을 덧붙여 더 나은 안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나의 출퇴근 계획,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파악 요령을 남편으로부터 배우고자 한다.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에 있어서 마치 신규가 된 느낌이다. 남편과 나는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더 잘 해내고자 노력하며 살아왔기에 서로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조언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인수인계를 한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황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미처 준비할 수 없었던 그 빈틈은 앞으로 1년을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따스한 격려와 부드러운 대화로 지혜롭게 잘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며칠간의 생각과 대화 끝에 두려움보다는 앞으로의 1년을 더 기대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려고 한다. 우리의 역할 교환 본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