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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Feb 19. 2023

유명한 전집을 사주지 않아도 아이는 책을 좋아합니다

상술을 뛰어넘기

첫째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육아박람회'라는 곳을 가보았습니다. 아이를 위한 교구와 책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남편과 딸을 대동하여 견학 삼아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저는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를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잘 알고 있던 유명한 출판사에서 판매하는 전집은 얼핏 제 기억으로는 150만 원 정도였습니다. 장난감을 책에 갖다 대면 소리가 나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불빛도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 무엇보다 전집과 교구를 포함한 한 세트가 백만 원이 넘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이건 내가 사줄 수 없다.'


남편과 저의 월급이 빤한지라 더구나 저는 육아휴직을 하고 있었기에 답은 나와있었습니다. 책과 교구에 100만 원은 도저히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처지가 처지인지라 아이 하나에 어떤 항목으로도 백만 원을 선뜻 쓰기에는 쉽지 않은 경제사정이었습니다.


그 뒤로 둘째가 태어나고 셋째도 태어났어요. 여전히 저희 집에는 자랑할 만한 전집이 없습니다. 첫째를 키우면서 맘 카페에서 중고로 산 자연관찰 전집 3-5만 원짜리 한 세트, 셋째를 임신했을 때 아파트 종이 쓰레기 배출일에 우연히 발견하고 주워온 세계명작동화 한 세트, 지인이 주신 세계명작동화 10권 남짓. 그리고 최근에 예비 초등생인 첫째를 위해 당근에서 구입한 책 15권 정도. 저희 집에 있는 도서 세트라고는 이게 전부입니다.


이 외에는 저희 부부가 중고서점, 온라인 서점에서 샀던 단권들, 조카가 물려주거나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림책, 동원육영재단 책꾸러기(지금은 사업이 종료된 걸로 압니다.)로 선정되어 받은 12권의 책, 도서관에서 선착순으로 배부하는 '북스타트 코리아'에서 받은 책 등 저희 집에 있는 책의 출처는 이토록 다양하지만 특징은 큰돈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사실 전집을 사주거나 이런저런 다양한 책들을 아이를 위해 들이는 경우 결국 (부모의) 목표는 한 가지더라고요.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저희는 비싼 전집을 사지 않았지만 동일하게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제 와서야 그렇게 노력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지 그냥 물 흐르듯 함께 책을 고르고 많이 읽어주었을 뿐입니다.


형편에 맞지 않아 살 수 없는 것은 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만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줬어요. 집에 책이 많지 않아 다양한 책을 읽기에는 절대적인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를 보완할 만한 좋은 장소가 있지요. 바로 도서관입니다. 새로운 책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집 근처 도서관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도서관 회원으로 등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등본을 들고 가서 가족회원으로 묶어두었어요. 원래는 1인 대출권수가 5권인데 저희는 가족이 5명이라 25권이 되었어요. 2주간 빌릴 수 있는 책이 25권이면 읽고 싶은 책을 많이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가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좋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유명한 전집이 없어도 일상 속에서 책을 읽고 그 과정을 즐기는 세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심심하면 혼자 책을 펼쳐서 읽고 있는 첫째의 모습을 봅니다. 심지어 첫째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한국 나이로) 6살인 둘째는 아직 글을 모르지만 책을 펼쳐 들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줄줄 읊어서 가족을 웃게 만듭니다. 셋째는 이제 24개월이 지났지만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칭찬을 받고 싶은지) 자신감 넘치게 한 명 한 명 불러댑니다. 책 읽자고 하면 욕심은 많아서 5권 넘게 이고 지고 오는 건 기본이고요.


책을 좋아할지 좋아하지 않을지는 결국 아이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코 특정 전집이 없어서 아쉬웠다, 특정 전집이 없어서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유명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다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제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책을 쭈욱 읽으며 잘 자라길 기대합니다. 일상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려고요. 어떤 방법들이 그 흔한 전집 없이도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하는데 유익했는지 그 비법(?)을 이제 와서야 하나씩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출한 책 내용이 궁금해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첫쨰
사진 © kimberlyfarm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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