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흥라떼 Dec 17. 2022

세 아이와 도서관을 들락날락합니다

책과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


어제 저는 첫째와 둘째의 도서관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선착순, 이벤트 광팬인 저는 연예인 콘서트 티켓팅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가지고 홈페이지에 접속했고 재빠르게 신청을 마쳤습니다.(하지만 첫째의 수업은 1분 늦게 신청해서 지금 대기 1번이랍니다.) 도서관 수업을 신청하고 나니 언제 제가 이렇게 변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작년에 제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때 도서관을 오가는 길이 유일한 외출이자 힐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책들이 유일한 저의 친구였습니다. 도서관에서 경제 서적 코너를 서성거리며 한두 권씩 빌리기 시작한 책으로 짠테크와 공모주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울한 티를 조금씩 벗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제 감정을 잡아먹는 우울한 기운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들 덕에 제가 육아는 못해도 다른 무언가는 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진짜 도서관이 저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 해의 제 삶에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저의 삶은 역시나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제가 대여하려는 책을 검색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특별히 사교육을 하지 않았던 저는 첫째가 들으면 좋을 그림책 수업이 개설되어 있길래 냉큼 신청했습니다.


그 후로 첫째는 도서관에서 하는 한두 달짜리 프로그램을 세 개 정도 더 들었습니다. 그냥 수업이 아니라 그림책과 연계한 수업이라 저와 딸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수업료 한 푼 들이지 않고 겨우 재료비 몇 천 원만 내면 이렇게 좋은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아이 셋을 키우는 제게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도움 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는 공연도 가끔 열립니다. 몇 달에 한 번씩 어린이 인형극을 하기도 하고 뮤지컬 공연, 음악공연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것 또한 선착순 신청입니다. 역시 저의 취향 저격. 선착순 신청에 성공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또 열심히 열심히 클릭을 합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 공연비도 저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중간중간 이렇게 도서관이나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공연을 알게 되면 감사한 마음으로 신청을 해서 함께 관람하곤 합니다.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던 남편과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지 1년밖에 안된 저는 요즘 수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것만큼은 꼭 해주자 싶어서 수요일 저녁에는 일상의 모든 일정을 간소화하고 간단한 저녁식사 후에 바로 집을 나섭니다. 책 20~30권을 거뜬히 담을 수 있는 카트 하나와 막둥이를 태운 유아차를 남편과 제가 하나씩 손에 꼭 쥐고요.


이전에는 비정기적으로 2주마다 한 번씩 또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에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일상의 다른 일들이 점차 도서관 갈 시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또 남편과 저의 피곤이 핑계가 되어 점점 아이들의 도서관 출입 횟수가 줄어들게 됐습니다. 매주 수요일을 도서관 데이로 정하고 나서는 남편과 저는 약속도 최대한 수요일은 피해서 잡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저희 부부만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해진 것입니다.


7살 첫째는 이제 좋아하는 작가님 책을 검색해 달라고 합니다.(한창 요시타케 신스케, 김영진 작가님 책에 빠졌었어요.) 때론 관심분야를 말하며 그 내용을 다룬 책을 찾아달라고도 합니다. 글을 잘 모르는 5살 둘째는 주로 자기가 좋아할 만한 그림책이 있는 책장 근처를 서성거리며 표지를 보고 직접 고르는 편입니다. 그리고 2살 막둥이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로 남편이 도서관 앞마당에 데리고 나가서 그저 함께 놀아줍니다.(훌쩍)


아이 셋을 데리고 도서관을 드나드는 것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한 저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한 남편이 7, 5, 2세 아이 셋을 데리고 도서관에 다녀오면 그날 밤에는 녹초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저희 부부가 지금 현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오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카트에 담아 온 책들을 꺼내 거실 바닥에 늘어놓습니다. 그 모습을 떠올려보면 마치 여행을 다녀온 날 설레는 맘으로 캐리어에서 온갖 기념품을 꺼냈던 제 모습과 유사합니다. 그 이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보물 찾기를 하듯 한 권 한 권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책을 재빠르게 읽고는 마음에 드는 책을 쏙쏙 골라내기도 합니다.


아이들 둘, 셋이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중얼중얼 거리며 피드백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저는 참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매주 수요일의 도서관 나들이가 힘들고 피곤해도 아이들의 이런 반응이 좋아 그다음 주에 또다시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도서관 그리고 그 속의 책과 함께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당분간은 도서관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저희 부부의 이런 노력이 지속될 것 같습니다.


한 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사진 © asiaculturecenter, 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