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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Jul 18. 2023

아이 셋 엄마, 한 달 용돈 10만 원인데도 신난다고?

나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시스템

오늘은 저의 한 달 용돈 10만 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지인들은 제가 한 달 용돈이 10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걸로 어떻게 사냐며 처음에는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매번 제가 10만 원으로 한 달을 즐겁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 나면  놀라곤 해요. 덧붙여 제 용돈에 대해 질문을 해옵니다.


이건(물건) 용돈으로 사는 거야?
용돈은 언제, 어디서 써?
10만 원으로 안 부족해?


저는 이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소신 있게 답변을 이어가요. 조금 전에도 친한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 제 용돈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는지 여러 가지를 묻더라고요.


답변을 하다가 이걸 글로 써서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기록을 남기게 되었어요. 저의 한 달 용돈 10만 원 라이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1. 통장과 카드는 무조건 따로 마련하기



저희 집은 모든 소비 예상과 지출 계획을 월급 날인 17일이 아니라 1일에 맞추어 준비합니다. 특히 생활비,  용돈을 비롯한 여러 지출 금액 등을 1일에 각 통장으로 송금합니다. 용돈 통장은 꼭 따로 마련된 빈 통장이어야 합니다. 절대 생활비나 다른 고정지출 금액과 섞여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용돈 통장에 연계된 카드도 꼭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k뱅크가 당시에 이율이 좋았기에 여기에 계좌를 개설하고 체크카드도 발급받았어요. (그냥 관리하기 편한 통장과 카드로 준비하셔요.) 용돈 한 달 10만 원인데 굳이 혜택 좋은 신용카드 만들어서 쓰려고 애쓰지 마세요. 잔액이 확실히 보여야 10만 원이 들어오는 기쁨이 느껴지고 지출할 때마다 소중한 10만 원에 대한 지출을 통제할 의지가 생겨납니다.


2. 금액에 대한 합의


처음에는 남편이 먼저 용돈 10만 원 라이프를 시작했어요. 육아휴직을 했던 남편은 제 눈치가 보인다며 점심을 사 먹거나 커피 한 잔을 사 먹질 못하더라고요.


나는 육아휴직 때 잘 사 먹었다고!
뭐가 문제야?


물었더니 월급을 온전히 벌어오지도 못하는데 밥 차리기 귀찮다고 사 먹는 게 너무 낭비 같아서 못하겠대요 (에효 착해라) 그래서 제가 너무 답답해했으나 당장은 해결책이 없더라고요. 몇 달간 답보상태였던 저희였는데 한 달은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어요.


나 한 달 용돈 10만 원만 줄 수 있을까?


짠하기 그지없었던 남편인데 10만 원 왜 못 줍니까. 사실 너무 소소한 금액이라고 생각해서 쌍따봉을 날리며 바로 ok 했어요. 그렇게 몇 달간 남편은 한 달 용돈 10만 원으로 커피도 사 먹고 친구도 만나고 온전히 자기를 위한 소비를 이어갑니다.


제가 곁에서 보기엔 솔직히 좀 귀여웠어요. 10만 원으로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더라고요. '나는 육아휴직 때 날 위해 쓴 돈이 10만 원은 그냥 넘은 것 같은데 호호호' 하면서요.


문제는 제게도 용돈 10만 원을 받으라고 자꾸 이야기합니다. 저는 당연히 싫다고 했지요. 이유는 한 달에 제한 없이 막 쓰고 싶었거든요. 제가 일을 하든 육아휴직을 하든 커피도 사 먹고 밥도 사 먹고 맘대로 쓰고 싶은데 10만 원이라는 굴레에 둘러싸이기가 싫었어요. 하지만 집요한 남편이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권유했고 결국 저도 한 달 용돈 10만 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왜 10만 원이냐고요? 금액을 정할 때 주의할 점 알려드릴게요!


절대로 고정지출비, 생활비가 포함되면 안 됩니다. 보통의 부부는 핸드폰 요금, 인터넷 요금, 교통비(기름값, 대중교통비, 톨비 등)를 용돈 안에 포함시켜서 30만 원, 50만 원을 받곤 해요. 이렇게 되면 용돈을 받는 게 즐겁지가 않고 짜증이 납니다. 우리 월급 몇 백만 원 받았는데 사이버머니처럼 슉슉 다 빠져나가고 나면 일할 맛 안 나고 신나지 않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용돈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내 의지로 지출을 하지 않는 한 처음 금액 그대로 남아있어야 해요. 그래야 모으는 재미도 느끼고 잔고 확인도 쉽거든요. 기름값 내가 원해서 내는 거 아니에요. 출퇴근하려고 쓰는 돈이잖아요. 폰 요금 내가 나만을 위해서 쓰는 돈 아니에요. 그저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위해 쓰이는 필수 재잖아요.


따라서 이런 돈은 모두 생활비 통장이나 다른 통장에서 지출되게끔 해야지 절대 용돈 통장에서 나가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금액은 두 분이서 충분히 의논해서 똑같이 정하세요. 저희야 잡음이 좀 있어서 남편이 먼저 시작했지만 저도 남편의 만족도와 설명에 감동이 되어서 몇 달에 걸쳐 설득당한 결과 함께 하게 되었어요.


두 분이 동시에 시작하신다면 육아휴직이든 전업주부이든 직장인이든 상관없이 용돈은 동일한 금액이어야 합니다. 이 금액은 순. 수. 하. 게. 내 자의로 쓰일 돈이기 때문에 절대 가계에 기여하는 수입에 비례해서 주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내와 남편 둘 다 가정이 잘 굴러가기 위해 일을 하며 가사와 육아를 통해 노력하는 중이니까 용돈도 똑같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3. 철저히 나를 위한 소비에만 용돈 쓰기


위의 내용과 이어집니다. 용돈을 받다 보면 때로는 자연스럽게 생활비와 섞일 때가 있어요.


이 부분은 제 경험을 위주로 Q&A로 써볼게요.

  

    아이 한 명과 같이 동네 나들이를 갔다.(일명 1:1 데이트) 맥도널드에서 아이는 감자튀김을 먹고 싶다고 한다. 나도 바닐라라테가 먹고 싶다. 이럴 땐?  

▶ 감자튀김은 생활비 카드로, 바닐라라테는 용돈카드로 결제합니다. 나는 꼭 먹어야 하는 게 아닌데 먹고 싶으므로 그건 철저히 '용돈카드'를 써야죠.

  

    친구랑 단둘이 서울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비는?  

▶ 생활비의 일부 후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제 용돈으로 지출합니다.


    영도 흰 여울마을을 다녀왔어요. 마그네틱도 사고 제 머리끈도 사고 마이멜로디가 그려진 아이 머리끈도 예뻐서 샀어요. 이럴 땐 어떻게?  

▶ 여행을 가서 산 기념품은 다 제 용돈으로 삽니다. 아이들의 머리끈이 꼭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예뻐서, 제가 사주고 싶어서 사는 거니까 다 용돈으로 지출합니다.(그게 아니라면 사지 않아야 함. 생활비 지출은 안됨.)


이제 감이 좀 잡히시나요? 내가 원해서, 나를 위해서 쓰는 지출은 모두 용돈입니다. 철저히 생활비와 분리하셔야 합니다.


4. 용돈의 최대 장점 = 자기 이해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용돈을 받으면 저를 잘 알 수 있는 장치가 되어요. 한 달 용돈 10만 원 결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10만 원이 결코 적지도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지금 용돈 통장에 잔고가 16만 원이 남아있어요. 이걸로 카페도 가고 제가 좋아하는 예쁜 노트도 사고 핸드폰 케이스도 사고 특별한 색의 형광펜도 사요.


제가 용돈을 받고 가장 먼저 했던 지출이 바로 '퍼스널 컬러테스트'를 받는 거였어요. 참고로 저희 가정은 외벌이 7년 차입니다. 첫째를 낳고부터 아이가 셋이 되는 동안 맞벌이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퍼스널 컬러 테스트 6-7만 원짜리를 생활비로 신청한다는 건 사치 같더라고요. 아마 용돈이 없었다면 지금도 꿈꾸지 못했을 거예요.


근데 용돈을 받고 나니 '이 돈으로 뭘 할까 뭘 해야 내가 가장 만족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화장도 잘 못하고 어울리는 옷 컬러도 모르고 항상 쇼핑만 하면 답답하고 자신이 없었던 제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용돈으로 신청하는 거니 남편에게 눈치도 안 보이더라고요.


다 하고 나오는 길에 엄청나게 만족을 했어요. 사실 눈물을 조금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를 위한 소비를 했다는 생각에 울컥해서요. 만족도가 진짜 높았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에 대해 너무도 잘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나서, 심지어 립스틱 하나도 고민 없이 알려주는 제품번호로 구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올라갔습니다. 저를 이해하게 된 똑똑한 지출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다 기관으로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먹태깡 세 봉을 사 먹는 게 좋을지 아니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게 좋을지 금액과 가치를 따져서 용돈을 소비하게 됩니다.


나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걸 즐거워하는지 용돈을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고민해요.


그게 곧 자존감으로 연결되더라고요. 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여러분도 꼭 한 번 도전해 보시길 바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결핍 가운데 답이 있더라고요.


풍요로움 속에서는 뭘 사도 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내 후회하는 경우 많잖아요. 살 때 딱 그때만 짜릿한 소비 경험 흔하지 않은가요? 부족과 결핍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강추해요.


5. 교육적 효과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지 말지 고민하시죠. 저는 어릴 때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아서 통제해 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20대에 번 돈이 줄줄줄 다 새어 나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 전에 제가 먼저 용돈 생활을 해보니 여러 가지 느끼는 바가 많아지더라고요. 쉬운 예로 제 용돈으로 아이 머리끈을 사 온 날


엄마가 너 생각해서 이렇게 마이멜로디 머리끈 사 왔어.
이거 엄마 용돈으로 산 거야~


아이가 엄마도, 아빠도 용돈을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로 저는 경제교육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소비 통제 없이 사고 싶은걸 다 사면서 아이에게는 용돈을 받아서 아껴 써라?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직접 모델링을 해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용돈을 받아쓰면서 있었던 일들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남편은 용돈으로 주식투자를 했어요. 그 사이 남은 용돈을 다 써버려서 결국 주식투자한 돈을 손절하고 다시 가져옵니다. 이 일을 통해 급하게 써야 하는 용돈으로는 투자를 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어요.


그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용돈의 장점, 용돈을 관리하면서 주의할 점 등을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용돈으로 커피 매일 사 먹다가 한 달 용돈 다 지출한 경우에는 아이에게 지금 덥다고 아이스크림 매일 사 먹다간 결국 월말에 진짜 더울 때 먹고픈 걸 사 먹지 못한다는 걸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용돈에 대해 할 말은 무~지 많습니다만.... 너무 글이 길어서 여기까지 할게요. 용돈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에게는 의미 없는 글이 될 수도 있지만 소비통제가 필요하고 부부용돈시스템이 궁금한 분에게는 유익한 글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 자발적으로 용돈 받으실래요? :)


사진 © alexandermils, 출처 Unsplash


최근에 용돈으로 사 먹은 라테 한 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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