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애써보는 경험
작년의 한 때 남편과 나는 가정의 돈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했었다. 1, 2주가 아니라 한 달, 두 달에 걸쳐 여유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의 재정상황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때 나눴던 숱한 이야기들 중 하나는 기존에 해왔던 이야기와는 조금 결이 다른 남편의 새로운 제안이었다. 바로 글을 좀 꾸준하게 쓰기 위한 동기부여장치로 특별한 보상체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좀 시큰둥했다. 일단 당시의 나는 지출의 여러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허리띠를 더 졸라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생활비의 일부를 떼서 저축해 두고 글을 열심히 쓴 사람에게는 용돈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니? 굳이? 그 돈은 또 어디서 만들어내고?
그저 글은 쓰고 싶을 때 쓰면 되는 거라 여겼기에 결국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서 따로 돈을 모아가면서까지 우리 둘을 위한 어떤 보상체계를 만드는 게 오히려 저축과 재테크에 걸림돌이 되는 비합리적인 방안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전부터 종종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꾸준하게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로 남기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내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저 쓰고 싶으면 쓰면 되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생활비로부터의 보상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성격상 옳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강요는 하지 않되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제안하는 편이기에 잊을만하면 한 번씩 또(!) 이야기했다. 각자 용돈 10만 원을 받자고 제안했던 그때처럼.
결국 변함없이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그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현금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서라도 글을 쓰려는 남편의 간절한 의지가 몇 번이나 이어진 제안 속에 보였다. 결국 보상금을 마련할 구체적인 방안을 정하고 애쓰는 남편 옆에서 나도 의견을 중간중간 덧붙여가며 우리는 일련의 정리된 규칙을 만들었다.
이게 그날 만든 규칙이다. 한 달 생활비가 10만 원만 오버되어도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는 나인데 글 좀 썼다고 내게 10만 원을 준다니! 아니 받고 싶지도 않은 돈을 왜 자꾸 주고 싶어 안달인지 다시 봐도 남편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이 날 완성된 규칙을 한 번 읽고 나서는 다시 보지도 않았다.(남편 미안)
어쨌든 나는 이 규칙을 함께 만들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나누기를 해 보면 글 한편 당 1,000원 꼴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좀 나쁠 정도였다. 2,000자 내외의 글 한 편을 쓰고 고작 천 원을 받다니? 아무리 천 원이 귀하다 해도 이 정도 페이라면 안 받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내 글 한 편이 천 원이라는 값으로 매겨지는 기분이 들자 오히려 글을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사춘기 중학생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반항심까지 생겨나려 했다.
이걸 보상체계라고 할 수 있긴 한 걸까 의문이 들기도 했던 그런 룰이다. 남편과의 약속은 자연스레 기억 저 편으로 넘겼다. 그저 평소처럼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블로그에, 브런치에 한 편, 두 편 이어서 썼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글시트로 그동안의 공모주 수익을 한 번 정리하고 싶어졌다. 작업을 하다 보니 갑자기 ‘글 100편=10만 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날따라 여유가 넘쳐서 그동안 도대체 글을 몇 편이나 썼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완벽주의자적 욕심까지 들었다. 작년에 직장에서 일하면서 찾아들었던 구글 연수가 생각나서 다시 재수강을 했다. 이미 공모주 수익 정리를 구글 시트로 여러 번 해본 터였기에 쓴 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비밀링크로 남편에게 공유하는 것까지 쉽게 마무리했다.
내가 그동안 쓴 글을 확인해 보니 총 80여 편의 글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자 어느새 내 마음은 간사한 탐욕자가 되어있었다. 언제는 글 한편당 천 원? 이라며 코웃음 치던 내가 이제는 ‘와,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른 발걸음 아 아니 손걸음을 옮기자!’ 싶어서 더욱 성실하게 더욱 열심히 더욱 고뇌하며 타닥타닥 타자를 빠르게 쳐내는 나로 변했다.
계획과 제안은 남편이 그리고 구글시트로의 정리와 공유는 내가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스터디는 잘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나의 글은 4월 28일부로 100편을 다 채웠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생활비의 일부를 모아둔 돈으로부터 10만 원을 입금받았다.
첫 번째 고지에 오르고 나니 이제야 한숨을 돌리며 함께 산을 오르듯 곁에서 함께 글을 써온 남편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세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 종종거리고 바삐 살아오는 삶 속에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처절할 정도로 아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 한 줄기 숨 쉴 구멍을 만들고 싶었을게다. 특별수당을 받아서, 성과급을 받아서 이 정도쯤은 쓸 수 있지 하며 새어나가는 돈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깨달음에 따른 꾹꾹 눌러 담은 결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첫 입금을 받고 보니 글 한 편을 쓰고 천 원을 받은 게 아니다. 우리의 팍팍한 살림 속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딘 내 노력에 대한 작은 선물이었다. 그저 사고 싶었던 옷 한 벌 사야지 하고 말 그런 돈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처음 용돈 10만 원을 받았을 때 이걸로 뭘 하면 내가 가장 만족도가 높을지 고민했던 그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10만 원으로 100만 원의 가치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11만 원, 12만 원어치의 기쁨 정도는 누릴 수 있게 이 기회에 나의 내면을 또 한 번 열심히 열심히 살펴봐야겠다. :)
+) 근데 이 글을 쓰고 나니 갑자기 10만 원 받은 게 더욱 실감이 나면서 좀 설레네요……? 글쓰기의 장점을 이렇게 또 하나 알아갑니다.
“글 쓰기는 받은 돈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