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팔걸 그랬어?
직장동료가 DSLR로 개기월식을 찍었다며 카톡에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기월식 사진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사진을 보는 건 잠시였고 오히려 DSLR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불현듯 잊고 있던 저의 흰둥이가 생각난 것입니다.
이 흰둥이로 말할 것 같으면......
2014년 12월 제 생일에 남편이 프러포즈 선물로 사준 제 인생 첫 카메라인 캐논 100D 화이트의 애칭입니다. 사실 카메라를 제 돈으로 사고 싶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자금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카메라를 사려고 적금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애인이었던 남편은 이런 제 이야기를 듣고는 프러포즈 선물로 준비를 해 온 것입니다. 기본 렌즈에 단렌즈, 여러 부속품과 예쁜 가방까지 사온 그의 마음이 고마워 눈물을 흘렸던 기억까지 선명합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 선물을 받고 얼마 안 가 저는 저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은 게 아니라 좋은 카메라로 잘 '찍히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후로 저는 꼬박꼬박 배터리 충전은 잘했지만 정작 사진을 찍는 건 오롯이 그의 몫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볼수록 저는 찍는 데에는 잼병이었습니다. 남편이 찍는 사진들은 어쩜 이렇게 다 느낌이 좋고 마음에 쏙 드는지. 결국 얼마 안 가 이 DSLR의 메인 유저는 남편으로 뒤바뀌었습니다.
남편이 DSLR로 찍어주는 사진 느낌은 좋은데 한편으론 뭔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역 카페에서 사진관 사장님이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시간을 맞춰 컴퓨터 앞에 대기하였고 선착순인지라 재빠르게 카메라 수업 신청 댓글을 남겼습니다. 물론 남편 이름으로요.
선착순에는 일가견이 있는 저의 신청 댓글은 당연히 수강생 명단에 여유 있게 들어갔습니다. 마침 남편이 첫 째를 돌보며 육아휴직을 하던 때라 저녁에는 집을 좀 나가고 싶어 하기도 했기에 그도 흔쾌히 제 카메라 수업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남편은 5주간 평일 하루 저녁에는 사진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습니다.
‘일취월장'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는 수업 하나를 듣고 오면 그걸 바로 사진에 적용해서 찍어냈거든요. 점점 아이의 모습은 자연스럽고도 똘망하게 잘 나왔습니다. 남편의 사진 실력이 부러웠고 그의 사진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적어도 저보다는 잘 찍어서 그리고 저도 앞으로 잘 찍히고 싶어서 더 칭찬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몇 년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저희는 그 사이 아이폰 XS, 11 pro 등으로 2~3년에 걸쳐 핸드폰을 바꾸게 되었고 아이는 셋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둘이었을 때는 간간히 DSLR을 들고나가 주말 나들이 때 사진을 찍더니 그 빈도수는 점점 떨어졌습니다. 종종 남편과 이런 패턴의 대화를 반복해서 했습니다.
남편 : (흰둥이를 쳐다보며) DSLR 이제 파는 게 어때? 아이폰 카메라 좋잖아. 이젠 폰카 기술이 엄청나서 DSLR이 못 따라와. 그리고 이건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밖에서는 찍을 엄두가 안나. 밖에 나가면 애들도 봐야 하는데 이거 들고 찍기가 힘들어.(뒤이어 뭐라 뭐라 구구절절)
나 : (무슨 소리!) 안돼… 그래도 이 흰둥이는 너무 좋단 말이야. 이번 주말에 000에 갈 때 이거 들고 가는 거 어때? 인생 사진 찍어줘~~~
남편 : 내가 아이폰으로 잘 찍어줄게. 카메라는 못 들겠어.(단호)
이렇게 카메라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자 했으나 기회는 번번이 날아갔습니다. 남편은 그 카메라를 제가 찍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저는 저를 너무 잘 압니다. 정말로 DSLR은 설정부터 어려워서 도저히 찍을 수가 없더라고요. 남편에게 넌지시 배워도 배워도 지식이 휘발되어 머리에는 남는 게 없었습니다. 이건 제 영역이 아님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여자친구가 갖고픈 물건을 사줬는데 그걸 써야 하는 사람은 정작 본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부담이었을까요.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 촐랑촐랑 뛰어다니는 아이들 잡으러 다니는 게 일상인데 그런 아이들을 무거운 카메라로 찍어달라는 건 참 저만 생각한 무리한 요구였다 싶기도 해요.
작년에 막둥이의 50일을 기념하여 집에서 촬영을 했을 때 잠시 흰둥이가 빛을 봤을 뿐 이내 서랍에서 잠만 자는 신세였습니다. 남편은 팔지 않는 저를 답답해했고 저는 프러포즈 선물이자 제가 (찍히기를) 좋아하는 흰둥이를 팔려는 그가 냉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저는 흰둥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깊었는데 오히려 이별의 결단은 정말 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핸드폰으로 신문기사 하나를 보라며 내밀었을 때입니다.
제목은
DSLR 카메라 시대 종언... 日 기술개발 중단
-니콘, 신제품 더 안 내놓고 미러리스 카메라 집중할 듯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 좋아져 10년 만에 판매 7분의 1로 뚝
저의 눈은 두 번째 줄에 쏠렸다. 1-2분을 들여 기사를 읽고 바로 한 마디를 내뱉었습니다.
"팔자."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게 남편은 1~2년간 힘들다, 무겁다, 못 찍겠다, 아이폰 카메라 성능도 못지않다, 이제 더 나은 폰카메라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팔자! 했는데 "아직은 아니야"라고 했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기사 하나를 읽고는 바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아 더 늦었다간 중고로 팔 수도 없는 진짜 애물단지가 되겠구나.’
그날로 남편은 당근마켓에 카메라와 부속품, 액세서리 전부를 30만 원에 내놓았고 어느 분께서는 내놓은 당일 바로 사가셨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팔아라고 했지만 차마 제 손으로 이 카메라를 팔 수는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너무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고 남편이 사준 프러포즈 선물이기도 해서 팔자니 괜히 마음 한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팔아달라고 했더니 냉혈한이 따로 없다 싶을 만큼 신속하게 올리고 거래를 마무리했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어도 내게서 쓰임을 다하면 적절한 타이밍에 내어주는 것도 맞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남편의 설득이 시작되었을 때 즈음 팔았다면 아마 두 배 이상의 값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면서 이런 아쉬움을 하는 느끼는 모습이 모순적이기도 합니다.
30만 원, 그 이상의 값은 제가 손에 쥐진 못했지만 흰둥이에 대한 제 마음을 확인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합니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는데 쓰임이 없다고 해서 매몰차게 그 추억을 돈을 받고 팔아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남편이 팔 자고 한 때에 바로 팔았다면 아마 저는 두고두고 후회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쓸 수 없는 물건을 이고 지고 사느니 차라리 쓰임을 다한 물건을 좋은 곳으로 보내고 통장에 30만 원이 들어오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마음의 결단이 내려지고 나서 팔고 나니 흰둥이와의 기억을 이렇게 웃으며 글로 적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요.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다 때가 있구나. “
저는 중고 마켓을 자주 이용합니다. 최근에는 6인용 식세기를 5만 원에 샀고요, 필요한 물건은 알람을 걸어두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도 해요. 저희 집에서 필요가 없어진 물건을 중고 마켓을 통해 팔기도 합니다. 혹여 집에 안 쓰시는 물건이 쌓여있다면 혹은 필요한 물건이 꼭 새것이 아니어도 된다면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해 보시길 조심스레 추천드립니다.(혹여 직거래는 낯선 사람과의 거래를 통해 불편한 일을 겪을 수도 있기에 '조심스레' 추천을 하는 것입니다.) 지구도 지키고 돈도 아끼고 집도 정리하고 1석 3조의 효과를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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