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흥라떼 Nov 20. 2022

절약은 하고 싶지만 인색해지고 싶진 않습니다

베풀고 살기 위한 노력

얼마 전 5년도 더 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삶을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알음알음 알아왔던 사이라 어색함 없이 그간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지인은 자신의 삶 속에서 겪고 있는 일상적인 어려움들을 제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었습니다. 비슷한 나이대라 그런지 가정을 이루고 겪게 되는 일상적인 어려움들이라 그런지 저도 제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를 나름 길게 나누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어서도 지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겁니다. 지인의 속상한 마음이 걱정되기도 했고 뭔가 제가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저도 제 일상을 벅차게 살아가는지라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똑 부러진 솔루션은 줄 수 없었지만 그냥 그 지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퇴근을 하고 집안일을 하며 순간순간 고민을 하다가 이런 제 마음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지인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짧은 응원 메시지와 함께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고맙고 감동했다며 답장이 왔어요.




저는 가계부를 성실하게 꾸준히 쓴 지는 한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쓰면 쓸수록 방법이 조금씩 진화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냥 쓰는 것에 의의를 두었는데 사실 그렇게 지속하니 절약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서관에 갈 때마다 절약과 저축, 재테크에 관련된 책을 빌려서 한 권 한 권씩 읽게 되었고 거기서 얻은 유용한 팁들 한 두 가지씩 제 삶에 직접 적용해 가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도 제 흥미분야대로 절약과 저축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봤던 시기가 있어요.(요즘은 좀 시들시들합니다만.) 남편도 주로 재테크와 부, 자기 관리에 대한 책을 많이 봤기에 자연스레 각자가 책에서 보고 배운 내용들로 가정경제에 대한 일상 나눔이 이루어졌어요. 그러면서 가계부를 작성하는 방법도 점점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그간 저희 부부는 가계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식비가 너무 많다.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을까?

도서비 지출이 크다. 줄이자. 어떻게?

예쁜 옷을 사고 싶다. 그런데 돈이 없다!

아이들 사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우리 집의 적정 사교육 비용은 얼마일까?


하나씩 하나씩 의문이 생길 때마다 저의 고민을 그리고 남편의 고민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자연스레 며칠간 함께 고민을 한 뒤 다시 답을 찾아갔습니다.(지금도 가계에 대한 고민은 또 있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발전할지 궁금한 우리 부부의 가계부)


그중 위에는 적지 않았지만 '베푸는 비용'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저희 가정에 절약이 절실한 시기여서 이것저것 어떻게든 비용을 줄일 고민만 하고 있는데 문제는 남에게 베푸는 비용도 줄이자니 사람이 여간 쪼잔 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른 분들에게 보답할 기회가 생겨도 얼마가 적절할까? 아 좀 부담되네. 이번에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이런 생각들이 제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저나 남편이나 흥청망청 쓰는 타입은 아닙니다. 하지만 점점 이런 생각이 들수록 우리 돈의 절약을 이유로 남에게 쪼잔해지고 싶지는 않아 졌어요.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한 가지 지혜로운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주변인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한 날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다 같이 만나기로 했었어요. 한 친구가 갑자기 선물을 내밉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깜짝 놀랐어요. 본인이 지인으로부터 섬유 향수를 선물 받았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대요. 그 기쁨을 저희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만남 전에 좋아할 만한 향으로 골라서 사 왔다는 겁니다.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었어요. 몇 달이 지나도 잊히지 않네요. 또 셋째를 낳았을 때는 여러 선물로 감동을 준 가족과 지인들도 많아요.  사실 요즘 셋째 낳는 집이 많지 않아 어디서 선물 받기도 되려 민망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지인들은 그런 저의 마음과는 달리 마음으로 그리고 축하의 선물도 함께 주어서 두고두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다 보답해야 할 빚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다른 모든 지출 분야는 한도를 정하고 차츰차츰 줄여나갈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나갔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비용은 한도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문제로 느껴졌습니다. 한도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맞는가라는 의문이 든 것이지요. 남편과 이에 대해서도 상당기간 의논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결국 저희가 찾은 답은 보답해야 할 분, 감사를 물질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베풀자, 다만 베푸는 데 있어서 적정선(금액, 범위 등)은 혼자서 결정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상대와 함께 의논해서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름 시원한 답을 찾았고 이후로는 의논을 하고 지출을 했습니다. 제가 주변 지인들 또는 아이의 친구 가족에게 무언가를 함께 나눌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어느 정도가 좋을지 묻고 의논해서 사곤 했습니다. 전혀 스트레스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함께 의논하니 상황에 더 적절하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물품들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준을 넘어서는 과한 지출을 하지 않게 되어 갈등 요소도 많이 사라졌어요.


매달 가계부에 각종 항목(예: 의류비, 생활비, 피복비, 교육비, 보건/의료비, 경조/교제비, 교통비 등등)의 통계를 내지만 베푸는 비용은 합계까지만 내고 이번 달은 경조/교제비에 지나치게 과한 지출을 했으니 반성하자 또는 다음 달에는 금액을 얼마로 더 줄이자 등의 셀프 피드백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간혹 가다 절약을 지나치게 한 나머지 남에게는 아주 인색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과 글로 접하게 됩니다. 저 스스로도 경계하는 모습 중 하나예요. 감사를 표현하고 상대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의 마음을 자그마한 선물과 함께 전하는 것도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에게 받고만 살 수는 없으니까요. 때로는 제가 고마운 마음, 응원의 마음, 보답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 아이들에게도 항상 남에게 베푸는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싶기에 이 부분은 과하지도 않게 그리고 부족하지도 않은 선에서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제가 2 회독을 했던 책 <돈의 속성>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남의 돈을 대하는 태도가 내 돈을 대하는 태도다.

내 돈은 엄청 아끼고 절대로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공금이나 세금의 사용에 대해선 무심한 사람들을 간혹 본다. 가볍게는 친구가 밥을 사는 차례에는 비싼 것을 주문하거나 단체 회식비용이 몇 사람의 과한 술값으로 지불되는 경우가 있다.
(중략)
남의 돈을 존중하다 보면 그 돈이 내 돈이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내게 베풀어 준 것은 당연하고 내 돈은 아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라고 봅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올 한 해 제가 잘 지낼 수 있게 도와줬던 주변의 고마웠던 사람들이 많이 떠올라요. 가족도, 친구도, 직장에서 만난 맘 좋은 동료들도요. 어떤 분들에게 어떻게 제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내년에는 마음이 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